미국 리퀴드 오디오사의 크리스 박(32) 부사장.

그는 "아시아 비즈니스의 개척자"다.

박 부사장이 몸담고 있는 리퀴드 오디오는 창업한지 3년된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뮤직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이 벤처기업 안에서도 가장 모험정신이 필요한 아시아 시장개척과 새사업
개발을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박 부사장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민 2세대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아시아인과 접촉할 기회조차 거의 없었을 정도로 백인
사회에 묻혀 살았다.

미국문화에만 젖어 있던 그가 아시아 비즈니스에 처음 뛰어든 것은 불과
25세 때인 지난 93년.

태국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미디어오브미디어의 해외사업팀 총괄
책임자로 전격 스카우트되면서부터였다.

그 사연이 재미있다.

버클리대(역사학) 졸업 직후의 일이었다.

"1~2년 사회경험을 쌓은 뒤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인이 되려는 계획 아래
컨설팅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한국 어느 그룹의 신사업 발굴 프로젝트
를 맡아 상업화할 기술을 찾으러 컴덱스쇼에 참석했었죠"

그때 박 부사장이 묵던 호텔 바로 옆방에 투숙한 사람이 미디어오브미디어
의 회장이었다.

같은 목적으로 쇼를 참관하던 회장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청년 크리스
박을 눈여겨 봤다.

그는 태국에 돌아가기가 무섭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연봉"을 제시
하며 그를 국제비즈니스 개발팀장으로 스카우트했다.

박 부사장은 "순전히 운(pure luck)"이었다지만 회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30여명의 팀원들을 이끌며 멀티미디어 스튜디오 등 새사업을 발굴,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96년 태국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미디어오브미디어도 심한
타격을 받았다.

그즈음 헤드헌팅회사를 통해 홍콩의 거대통신업체와 미국의 신생 벤처기업
인 리퀴드 오디오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박 부사장은 리퀴드 오디오를 택했다.

이유는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직장이기 때문.

아.태지역 총괄을 맡게 된 박 부사장은 아시아 첫 진출국으로 주저없이
한국을 선택했다.

리퀴드 오디오의 아시아 진출패턴이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다른 회사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은 순전히 박 부사장 때문이다.

그의 신사업 개발재능은 한국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맞춤 CD제작, 카페, 인터넷방, 음반사 판촉장소의 기능까지 "인터넷 뮤직
카페"라는 사업아이디어를 낸 것.

사이버풍의 인테리어로 단장한 카페에 들어오면 컴퓨터를 통해 장르 국가
가수 등에 관계없이 원하는 곡을 선곡한 뒤 20분 안에 CD에 녹음할 수 있는
장소다.

박 사장은 오는 8월중순께 압구정동에 1호점을 낼 계획이다.

사업추이를 봐가면서 일본 태국 등 아시아 다른 나라에도 도입할 예정.

미국 본사에서도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 미주와 유럽에 역수입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리퀴드 오디오의 한국 비즈니스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 1월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 6개월후면 그는 일본으로 자리를 옮긴다.

일본사업을 궤도에 올려놓고 나면 다음 정박항은 홍콩.

이렇게 하나씩 아시아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게 그의 임무다.

신사업 아이디어를 싣고 아시아 시장을 탐험하는 크리스 박.

그가 바로 "21세기형 벤처 파이오니아"가 아닐까.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