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외국어능력과 국부 .. 정을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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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병 < 작가. 한국소설가협회장 >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계속했으니까
벌써 40년이란 세월을 보낸 셈이다.
그러는 동안에 모두 67권의 책을 냈는데 그 중에 40권은 장편소설이고 16권
은 단편소설집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은 모두 1백30여편이 된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권영민 교수는 그의 연구에서 내가 지난 1백년 동안에
소설로서는 가장 많은 책을 낸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양적으로 풍성한 것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 양이라는 것은 반드시 질과 같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양이 많다고
해서 질까지 좋다고 우기는 것은 좀 촌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통상적으로 양이 질과 반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질은 양과 같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양이 반드시 돈과 정비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한두권의 작품으로 떼돈을 번 재주 좋은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런 운도 재주도, 그런 상업성이나 대중성도 없어서
돈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초기록적인 양의 소설을 썼지만 궁색은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작가 일기"라는 책을 보면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와
영어를 쓰는 작가의 경우를 간단히 비교해 놓은 부분이 있어서 흥미를 끈다.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5천만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불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가난을 면키 어렵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은 최소한
3억명은 되니까 영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잘 벌고 프랑스
작가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좁은 문단 안에서 아우성을 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는 인구가 4천만명 뿐인데다가 이 4천만명도 독서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낮다.
그러니 책을 한권 내봐야 몇권이나 팔리겠는가.
적어도 일본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지금의 세배는 팔릴 것이고
그러면 작가들의 수입도 오늘날처럼 적빈상태를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는지
모른다.
이런 조건하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작가가 된 것은 무언가 직업선택
에 잘못이 있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다시 이 나라에 태어난다면 나는 그래도 작가가 될 것인가.
물론 나는 다시 작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이다.
그래야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세계적인 작가가 될 것이며
돈도 많이 벌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망상이다.
그러나 우리민족과 국가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서 이것은 절대로 망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야말로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수두룩하게 나와야 하고 독일어로
공부하는 학생들, 러시아어나 스페인어로 장사를 하는 기업인들도 수두룩하게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만족스런 결과가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은데다가 천연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다.
가지고 있는 것이래야 얼마 안되는 인구자원 뿐이다.
이 인구자원을 가지고 우리가 크게 번영해 나가려면 외국인을 충분히 이용
해야 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온 국민이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과학도 중요하고 산업도 중요하고 예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외국어를 가장 잘 하는 민족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나 이스라엘 같은 작은 나라들의 경우를 보라.
그들의 외국어 구사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외국인들이 가장 살기 편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국외
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말 잘하는 똑똑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는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부도 우리가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8일자 ).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계속했으니까
벌써 40년이란 세월을 보낸 셈이다.
그러는 동안에 모두 67권의 책을 냈는데 그 중에 40권은 장편소설이고 16권
은 단편소설집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은 모두 1백30여편이 된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권영민 교수는 그의 연구에서 내가 지난 1백년 동안에
소설로서는 가장 많은 책을 낸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양적으로 풍성한 것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 양이라는 것은 반드시 질과 같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양이 많다고
해서 질까지 좋다고 우기는 것은 좀 촌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통상적으로 양이 질과 반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질은 양과 같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양이 반드시 돈과 정비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한두권의 작품으로 떼돈을 번 재주 좋은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런 운도 재주도, 그런 상업성이나 대중성도 없어서
돈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초기록적인 양의 소설을 썼지만 궁색은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작가 일기"라는 책을 보면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와
영어를 쓰는 작가의 경우를 간단히 비교해 놓은 부분이 있어서 흥미를 끈다.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5천만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불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가난을 면키 어렵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은 최소한
3억명은 되니까 영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잘 벌고 프랑스
작가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좁은 문단 안에서 아우성을 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는 인구가 4천만명 뿐인데다가 이 4천만명도 독서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낮다.
그러니 책을 한권 내봐야 몇권이나 팔리겠는가.
적어도 일본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지금의 세배는 팔릴 것이고
그러면 작가들의 수입도 오늘날처럼 적빈상태를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는지
모른다.
이런 조건하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작가가 된 것은 무언가 직업선택
에 잘못이 있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다시 이 나라에 태어난다면 나는 그래도 작가가 될 것인가.
물론 나는 다시 작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이다.
그래야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세계적인 작가가 될 것이며
돈도 많이 벌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망상이다.
그러나 우리민족과 국가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서 이것은 절대로 망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야말로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수두룩하게 나와야 하고 독일어로
공부하는 학생들, 러시아어나 스페인어로 장사를 하는 기업인들도 수두룩하게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만족스런 결과가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은데다가 천연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다.
가지고 있는 것이래야 얼마 안되는 인구자원 뿐이다.
이 인구자원을 가지고 우리가 크게 번영해 나가려면 외국인을 충분히 이용
해야 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온 국민이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과학도 중요하고 산업도 중요하고 예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외국어를 가장 잘 하는 민족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나 이스라엘 같은 작은 나라들의 경우를 보라.
그들의 외국어 구사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외국인들이 가장 살기 편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국외
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말 잘하는 똑똑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는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부도 우리가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