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 다시 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날 등 가족간에 따스한 사랑을 주고 받는 뜻깊은
날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가정의 달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의미있는
달이 될 것 같다.

97년 말 들이닥친 IMF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틀과 기존관념을 짧은 기간에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국가가 부도위기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사회 구성원 간에는 유대감이 순식간
에 무너져내렸다.

실업대란과 기업구조조정의 태풍속에서 일터를 잃은 가장이 속출하고
빚더미에 눌려 보금자리마저 빼앗긴 가정이 줄을 이었다.

노숙자와 이산가족 결식아동이 새래운 유행어로 대두될만큼 98년의 한국
사회는 기쁨과 환희보다 경제적 고통과 근심으로 더 얼룩졌다.

그러나 불과 1년 반도 채 못된 기간에 한국인은 다시 일어섰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IMF 우등국으로 평가할 만큼 짧은 기간내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극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경제적 고난과 물질적 고통을 물리쳐
준 우리 고유의 가족간 유대와 사랑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올해 맞는 5월 가정의 달은 IMF위기 극복의 시점에서 가족의 중요성
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소규모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L(43.경기도 분당)사장에게
지난 한해는 생애 최악의 시련기였다.

거래업체들이 잇달아 부도를 내면서 창업 3년만에 막 자리를 잡아가던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겨야 했고 가계를 꾸려가기 어려울 만큼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들도 생활고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명문대 대학원을 나온 L사장은 지난 95년까지 국내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과장이었다.

품질관리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경험을 살려 ISO전문 인증업체를 창업하기
로 결심하고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했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퇴직금을 모아 작으나마 주식회사를 설립해 발이 닳도록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회사가 걸음마를 끝내자마자 터진 IMF사태는 자리를 잡아가던 회사에
치명타가 됐다.

수주물량이 급감했고 끝낸 일감도 대금회수가 어려워졌다.

급기야 창업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고 회사규모도 줄여야 했다.

하루 하루가 힘겨웠던 L사장이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단란한 가족이
곁에 있었기 때문.

그는 고난 속에서 좌절하려 할 때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보면서
힘을 얻었다.

월말 자금결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좋은 날이 올 것"
이라는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L사장은 "올들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다소 회사 상태가 나아졌다"면서
"지난 1년간은 두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가족의 힘과
사랑이 나를 지켜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IMF사태로 수렁속에 빠졌던 사람은 L사장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환위기 이후 기본적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눈물과 한숨
속에 하루 하루를 보냈다.

개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위기감이 커지면서 나라의 내일마저도 암흑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98년 한해였다.

IMF 1년 반을 지나면서 한국 경제는 조금씩이나마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IMF사태 이후 처음으로 신규 취업자가 퇴직자를 넘어서는등
고용시장도 회복조짐을 나타냈다.

실물경제의 거울인 주가도 700선을 훌쩍 뛰어넘으며 완연한 봄기운을 자랑
하고 있다.

꽁꽁 얼어붙었던 백화점 매장은 봄세일을 계기로 IMF이전 수준으로 거의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도 지난해 불가피하게 없앴거나 삭감했던 상여금과 월급을 상당폭으로
회복시켜 가장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최근 증시활황으로 대호황을 누리고 있는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계는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김형렬 신영증권 기획실장은 "증시활황으로 전사원에게 최근 5백% 특별
상여금을 지급했다"면서 "회사측에서도 IMF로 주눅들었던 가장의 기를
되살리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올들어 경제가 다소 회복되면서 IMF 탈출구도 이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상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98년 최악의 위기상황을 넘기는 데 가족의 힘이 버팀목이 됐듯이 위기탈출
에도 가족의 힘은 든든한 견인차가 될 것이다.

중견 물류업체를 경영하는 정한식 새한익스트랜스 사장은 "한국인은 위기가
닥쳐올수록 더욱 강해지는 민족"이라며 "재도약을 위해서는 마음놓고 자신의
일에 매달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화목한 가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IMF 위기로 한때나마 소홀히 했던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된
다는 것을 경제현장의 목소리는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 최인한 기자 janu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