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버티면 된다"

올해 제1차 추경예산안을 심의했던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그동안의 경험
에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예산당국이 아무리 "철벽"같은 논리를 앞세워 완강히 거부해 봐야 의원들의
버티기에는 당해 내지 못하더라는게 그의 경험이다.

어민피해 대책 예산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당초 4백37억원 이상 추가 증액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예산은
7백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거침없이 늘어났다.

결국 어민피해 보상액은 본예산 2백98억원, 정부제출 추경 1천억원을 포함해
모두 2천2백98억원으로 불어났다.

예산당국은 감척 어선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확히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는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느냐는 논리를 제시했었다.

그러나 감척어선 50척 이상의 추가 지원이 불가능하다던 논리는 사라졌고
결국 3백15척으로 지원 대상을 늘려줬다.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던 2백65척의 배가 이삼일 만에 갑작스레 나타난
것이다.

결식학생 지원 예산도 마찬가지.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3당 총무회담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이 예산을
반영해 달라고 "소란"을 벌였고 예결위에서도 거듭 소신을 밝혔다.

예산청은 "이미 지방교육재정에 결식학생 지원비가 반영돼 있어 추가적인
국고 지원은 불가능하다"며 완강히 버텼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추가 예산편성은 불필요한 국고 낭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75억원의 "대형 떡고물"이 선물로 내려졌다.

세출 예산이 이렇게 늘자 정부는 금융구조조정 예산을 깍아 이를 충당했다.

제일은행 등의 추가 부실로 구조조정 예산이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던 예산당국의 소신이 또 한번 무너져
버린 것이다.

예산안을 처리하는 국회 본회의에서 재경부장관은 반드시 "세출예산 증액에
이의없다"는 뜻을 밝혀야 예산안이 통과된다.

예산 삭감은 철저히 국회의 권한이지만 예산 증액의 경우 정부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번 추경예산에서도 도로 지원, 재해위험지구 정비, 수계사업 같은 선심성
예산이 끼어드는 구태가 어김없이 재연됐다.

나눠먹기식 예산 편성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예산당국의 확고한
소신과 원칙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