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는 변호사"

김정선(38) 변호사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이력이다.

김 변호사는 법률구조공단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지난 87년 공단이 설립된 이후 줄곧 이곳에서만 근무해온 유일무이한
변호사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보낸 "13년"은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에게 법률구조로 봉사해 보자"는 사명감 없이는
애당초 쌓기가 불가능한 "금자탑"이다.

법률구조공단에 들어온 변호사들 대부분이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외부로
빠져 나간다.

공단 변호사의 길을 걷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금전적인 욕심을 배재하고 오로지 공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봉사한다는
것.

특히나 돈 잘 벌기로 알려진 우리나라 변호사들로서는 수도자가 되는 것과
다를바 없는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정말로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법률구조 전문변호사"

그에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한눈 팔지 않고 외길 인생만 달려온 김 변호사에게 사회가 수여한 값진
훈장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칭찬이 쏟아지는 현실을 못내 서글퍼한다.

공단 창단이후 무수히 많은 변호사들이 사명감으로 공단을 찾아왔지만
얼마 안가서 대다수가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공단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나 선배 변호사들을 법정에서 만날 때
"아직도 공단에 근무하느냐"라는 인사를 받을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 인생에 있어 공단은 이제 제2의 고향입니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이 있는 한 공단의 터줏대감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 공단의 활동영역이 더욱 다양해지고 공단이 한층 발전
하게 되면 떠났던 변호사들도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공단에 대한 남다른 애착도 가끔은 회의로 바뀔 때가 있다.

서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볼 때 그렇다.

"최선을 다해 법률구조 활동을 벌였는데도 의뢰인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릴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요"

법률구조공단이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되다 보니 법률구조를
하다보면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오해하는 서민들이 의외로 많다고 털어놓는다.

물론 이런 일들은 김 변호사가 일을 통해 얻는 보람에는 비할바가 아니다.

김 변호사가 맡는 사건은 법률구조의 특성상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굵직굵직한 사건은 없다.

모두 고만고만한 사소한 사건들이다.

거액의 수임료가 생기지도 않는다.

서민을 위한다는 사명감이 없이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기 어려운
사건들의 총집합이다.

하지만 서민 한 사람,한 사람으로 보면 인생이 달린 중차대한 사건들이다.

그가 주로 맡는 사건은 손해배상, 임대차, 임금 등 노동관계, 가사 사건,
대여금, 부동산 관련 소송들이 대부분이다.

한해 평균 그가 다루는 일반적 법적 소송사건만 무려 1백50여건.

신청한 사건중 조사에 착수하는 것만도 연간 3백여건에 이른다.

이런 과중한 업무속에서도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오로지 "힘없는 서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이다.

여성 근로자가 억울하게 직장에서 해고당하자 대법원에서 무효확인 승소
판결을 받아낸 일, 드라이크리닝 기계의 하자로 피해를 입은 세탁소 주인을
구제한 일, 이혼직전까지 갔던 부부를 화해를 통해 행복한 커플로 만들어
줬던 일.

자신이 맡아 원만하게 해결해 줬던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핀다.

"아직도 변호사 수임료와 소송에 따른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아예
소송을 포기하는 서민들이 많아요"

김 변호사는 최저 생계비를 유지하면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법률구조
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고 진단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같이 변호사가 많은 나라도 정부가 연간 수억달러의
예산을 법률구조 분야에 투입한다"며 "법률구조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도 정부차원에서 과감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류성 기자 star@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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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