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교수. 도시계획학 >

참으로 사고는 예고없이 찾아온다.

대한항공의 화물기가 중국 상하이의 진흙밭에 추락한 처참한 모습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는 듯 해 부끄럽기만 하다.

대한항공은 97년 여름 괌 참사이후 연이어 10여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사고를 냈다.

이것은 단순히 대한항공의 불행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의
이미지 추락은 물론 나아가 인천 국제공항을 동북아의 허브(중추)공황화
한다는 전략에도 차질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직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미리 우리 항공사의 잘못
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대한항공의 사고율은 동아시아의 경쟁항공사에 비해 훨씬 높고
그때문에 보험요율도 높다.

결국 대한항공의 미국측 제휴선이었던 델타항공마저 제휴의 잠정중단을
선언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 전반에 부실 신드롬 또는 안전불감증은 대한항공의
경우만이 아니다.

이것을 고속성장사회의 불가피한 부작용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안전"이란 99.99% 이상의 완벽한 정확도를 요구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기업은 적당한 위험은 감수해왔고 요행으로 피해가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었다.

안전은 보험금 부담 정도로 여겨 왔다.

사회의 성숙도는 인명에 대한 중시도에 따라 판명된다.

우리는 이제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가는 단계다.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항공관련 안전시설을 보완하고 철저한 사고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사고의 예방책이다.

대한항공은 국민기업이었다.

국제선의 경우 정부가 쌍무협정에 의해 항공노선을 확보하면 대한항공의
몫이었다.

88년 아시아나 항공이 등장한 이후에도 항공노선은 경쟁적이라기 보다는
안배적 차원에서 배분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이 오픈 스카이(항공노선 개방) 정책을 표방하고 나섬에 따라 항공시장
도 점차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다.

외국사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국적사 우대정책도 점차 없어지게 된다.

일부에선 국내선 시장의 진입장벽에 대한 규제완화의 소리가 높아지고
"제3민항"의 등장도 거론되고 있다.

소형 항공기의 시장진입도 예상해 볼수있다.

우리나라는 좁다.

대형 제트기보다는 중소형의 프로펠러기에 의해 중소도시를 커버하는
항공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이 경우 비행장의 규모도 작아져 적지를 찾기도 수월하고 대도시에는
방향별로 배치할 수도 있다.

활주로가 짧은 지방공항은 대형 제트기를 운항할 필요가 없다.

소형이라도 안전성에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항공시장은 경직되어 있다.

경쟁은 없고 나눠먹기 식으로 항공노선을 분배받는다.

지난해에도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19개 신규노선을 확보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각각 중국시장을 확장한 바 있다.

오늘날 같은 시장구조 아래에서 이처럼 정부가 일거리를 나눠주는
형식으로 그 산업이 제대로 육성될 것을 기대한다면 그건 착각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항공산업의 현주소다.

항공산업은 비록 양사체제라도 보다 경쟁적으로 개편되어야 하며 노선도
경쟁과 보완을 통해 특화돼야 한다.

상하이의 비행기 사고 이후 많은 언론이 항공사의 조직 등에 주목하는 것은
이같은 안이한 항공산업의 구조 탓이다.

여기서 사고의 개연성이 배태되는 것이다.

국민들조차 국적사 항공기 타기를 겁내는 판에 어떻게 외국인들이 이용하기
를 기대하겠는가.

정부와 항공사의 노력 덕택에 미국은 지난해 사고율 "제로"를 기록했다.

우리는 지금 막대한 투자를 하며 인천에 새로운 국제공항을 건설하고 있다.

이것을 동북아시장의 허브공항으로 육성하려면 먼저 국적사들이 인천 공항을
중심으로 허브 앤드 스포크(중추공항과 지선공항)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허브공항의 우선적 조건도 안전이다.

항공사는 안전을 세일즈해야 한다.

안전이야말로 최상의 투자요 경쟁력이다.

안전을 담보한 국적항공사의 경쟁력 회복은 우리 항공산업의 시급한
과제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