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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TV에서 우연히 한 광고를 보고나서 매우 착찹하고 서글픈 느낌을
받았다.

그 광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가 혼자서 과자를 먹고 있는데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과자는 아들을 주려고 남겨 둔 것인데 왜 당신이 먹어요?"

그리고는 맛있게 과자를 먹는 아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비춰졌다.

광고의 의도는 과자가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내 마음은 내내
편안하지가 않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위상은 참으로 대단했다.

한 가정의 어른으로서 체통과 위엄을 갖고 계셨고 온가족의 존경을 받았다.

아버지가 드실 밥은 밥솥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주발에 맨먼저 떠서 재빨리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보관했다.

반찬 역시 별도로 준비하곤 했다.

그 맛있는 반찬이 먹고 싶어서 배고픔을 참으며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아버지는 근엄하면서도 관대하셨다.

말대답을 했다거나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들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때때로 특별 용돈을 집어주고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는 해결사
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숙여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직격탄을 맞고나서는 완전히 꺽여버린 듯 하다.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해서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기만하다.

또 가정에서는 부인이나 자녀의 존경은 커녕 오히려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성세대로 취급받고 있다.

TV나 신문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견디다못해 스스로 아버지의 자리를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과 부인에게 매맞는 남편의 모습을 곧잘 보여준다.

실로 오늘날의 아버지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항상 까치발을 들고
긴장하고 있어야 할 정도로 힘들고 불안스러워 보인다.

예로부터 가정이 화목하고 질서가 있어야 사회와 국가가 올바로 서는
법이다.

이 험한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우리 아버지들의 위상이
제대로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