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갈라진다.

모세의 기적이 아니다.

매년 이맘때(음력 2월~4월초) 전남 진도 앞 바다에 가면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이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띠섬) 사이에 바닷물이 빠지면서 1~2시간
가량 1.2km의 바닷길이 생기는 것이다.

지난 71년부터 75년까지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낸 피에르 랑드가 현장을
목격한 뒤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이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해할현상이 과학자들의 눈에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일 뿐이다.

밀물과 썰물시 해수면의 차가 크고 특정 지형을 갖춘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실제 진도외에도 충남 보령시 무창포해수욕장을 비롯해 전남의 사도와
경기 제부도 및 전북의 변산반도 등에서도 바닷길의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해외에도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남쪽 경계선을 넘어 영국의 북쪽 지역으로 24km쯤 들어서면
동쪽 해안에 "거룩한 섬(Holy Island)"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매일 오후에 일정 시간동안 바닷물이 빠지면서 섬과 대륙을 잇는 길이
나타난다고 한다.

<> 바닷길은 우선 간만의 차(조차)가 심해야 생겨난다 =해수면이 최고가
되었을때인 만조와 최저가 되었을때인 간조간의 높이 차가 커야 한다는
얘기다.

진도 앞 바다의 경우 조차가 4m 이상이면 바닷길이 형성된다.

이 지역의 평균 수심은 5~6m.

썰물때 4m 이상 바닷물이 빠지면 평균보다 수심이 얕은 곳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 서해안에 집중돼 있는 것도 간만의 차가 심해서다.

서해안의 경우 간만의 차는 3~8m에 이르는 반면 남해안에서는 1~3m, 동해안
은 0.2~0.3m에 불과하다.

인천항은 간만의 차가 크기로 유명한데 사리때는 평균 8m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조차가 일어나는 곳은 캐나다의 펀디만으로 16m 이상이나
된다.

그러면 왜 서해안이 동해안에 비해 조차가 클 까.

밀물때 밀려오는 커다란 파도인 조석파가 태평양을 회전하다가 동지나해를
거쳐 황해로 밀려 들어 오는데 인천만과 같은 좁은 만에 에너지가 밀집되는
탓에 조차가 크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반면 동해로 유입되는 조석파는 좁은 대한해협을 통해 들어온 뒤 넓은
동해에서 퍼지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가 낮아져 조차가 작다.

<> 밀물때 파도가 해안선과 평행을 이루면서 밀려와야 한다 =간만의 차가
아무리 커도 섬과 육지 사이의 수심이 깊으면 바닷길은 열리지 않는다.

이 사이의 해저에 조개껍질이나 침식된 자갈들이 쌓이면서 모래톱이 자라야
한다.

그래야 쉽게 바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안희수 교수(지구과학과)는 "조석파가 해안선과 평행하게 밀려올때
섬과 육지 사이의 해저에 퇴적물이 쌓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경우 섬을 지나며 갈라졌던 조석파가 섬과 육지 사이에서 다시 합쳐지고
이 과정에서 조개껍질 등이 휩쓸려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섬과 육지 일대에 작은 섬들이 많이 있으면 부스러기들이 퇴적되기
좋은 조건이 된다.

아무리 센 물살이라도 여러 섬들을 지나면서 약해지기 때문이다.

진도 인근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곳은 물살이 빠른 탓에 퇴적물이 쌓이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는
하기 힘들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차가 커 발생하는 급류를 이용해 왜군을
물리친 명량대첩을 이룬 곳이 진도대교 부근인 것을 보면 얼마나 물살이
빠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회동과 모도 사이 해저에 퇴적물이 쌓였던 것은 주위에 바로
10여개의 작은 섬들이 유속을 떨어 뜨림으로써 조류에 실려온 부스러기를
퇴적 시켰기 때문이다.

바닷속의 모래톱이 자라 육지와 연결되면 이를 지형학에서는 육계사주라고
부른다.

원산만을 싸안듯이 길게 튀어나온 함경남도의 호도반도가 대표적인 육계
사주다.

진도 앞 바다에 형성된 육계사주는 높이 1.5m의 둑 모양을 하고 있다.

동쪽은 경사가 가파른 반면 서쪽은 완만하게 펼쳐져 있다.

<> 바닷길은 언제 생기나 =지구 달 태양이 일직선상에 있을때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때엔 달과 태양이 각각 지구를 잡아 당기려는 힘(만유인력)이 상쇄되지
않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 강한 인력이 지구에 작용한다.

3개의 천체가 일직선상에 있을 때는 바로 보름과 그믐이다.

한달에 2차례다.

달이 지구를 한달에 한번 돌기 때문이다.

간만의 차가 가장 큰 사리가 일어나는 때다.

무창포 해수욕장은 석대도까지 한달에 2차례 바다가 갈라지는 장관을 연출
한다.

수심이 얕은데다 간만의 차가 심한 곳은 매일 바닷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하루 2차례 썰물때마다 갯벌 한 가운데로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가 대표적
이다.

하루 2차례 조석(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지구가 하루 한번 자전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한 점에서 볼때 달의 만유인력은 하루에 두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지방에 가까운 고위도에 갈수록 하루에 한번만 조석이 발생한다.

계절별로는 봄과 가을에 바닷길 현상이 잦은 편이다.

안 교수는 "지구를 도는 달의 궤도가 타원형인데다 달과 지구와의 경사도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봄 가을이 바닷길이 만들어지기엔 좋은 때"라고
설명했다.

진도의 경우 매년 이맘때와 가을께(음력 9월~12월) 바닷길이 형성된다.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