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창균 <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 팀장 ckche@hri.co.kr >

중산층은 정치 사회 혹은 문화적으로 한 나라를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 유지의 핵심 주체이기도 하다.

중산층의 건실한 구매력이 살아나야 자동차 가전 주택 등 주요 내구재의
수요 기반이 확보된다.

또 이들 계층의 가처분 재산 규모가 한국경제 투자 재원의 자립도를
좌우하기도 한다.

더불어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함으로써 경제 성장의 주요 원동력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IMF 체제를 분수령으로 중산층 가구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4인가족을 기준으로 월소득 1백75만원~3백94만원을 중산층 가구로 간주할
경우, 그 비중이 97년의 52.3%에서 98년에 45.8%로 급감했다.

더욱이 중산층의 주관적 계층 해체 의식은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IMF 이전에 중산층이었으나
지금은 하층으로 전락했다는 응답이 20%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산층이 한 사회내에서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비춰 보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소득불평등도
는 지난 85년 수준으로 뒷걸음쳤다.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는 97년 0.2831에서 지난해엔 0.3092로 악화됐다.

중산층이 약화되고 있는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대량실업사태에 따른
고용불안감 심화, 임금 삭감, IMF 위기 직후의 자산가치 급락이나 고금리에
따른 이자비용 증대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글로벌 시대의 무한경쟁 상황을
이겨내기엔 한국 중산층의 경쟁력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그간 고용조정의 주된 대상은 중산층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사무직
중간관리층이었다.

이렇게 사무직 중간관리층이 고용조정의 주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이들 부문이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과잉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생산직 등 다른 부문 인력에 비해 합리화의 여지가 컸다는 얘기다.

다만 예전처럼 전면 경쟁에 노출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이런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산층의 경쟁력이 취약했던 것은 중산층 개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경제구조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

고도성장 시대에 기업들이 규모 확대 전략을 추구하다 보니 당장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니더라도 일단 확보해두는 것이 필요했다.

이는 곧 사무직의 생산성이 낮아지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종신고용 관행이 합리화를 저해한 측면도 있다.

더불어 전문가가 아니라 모든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를 키우는 조직 풍토 역시 사무직 중간 관리층의 생산성 제고를
막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통합력이 제고되야 하는 만큼, 현재와
같은 중산층 약화 현상이 방치될 경우 한창 추진중에 있는 경제의 구조 개혁
및 재도약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중산층의 재구축을 위해서는 우선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 저하를 막거나
가계 지출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간접세 일부를 환급해 주거나 특별소비세 부과 품목을 축소하는 등 세제
지원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산층 가계 지출의 약 1/4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교육비, 그 중에서도 특히
사교육비를 절감시키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중형 임대주택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주거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경쟁기반을 강화하는 대책을 수립하는 일이다.

우선 중산층의 핵심적 구성원인 중간관리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새로이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 컴퓨터 등의 지식기반산업에
필요한 전문 지식 습득 기회를 부여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당장은 신규
창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더불어 중간관리자층이 새로운 직장으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도록
직업안정망을 확충해야 한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에서 나온 중간관리자층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이들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등과 연계시켜주는 별도의 직업안정망
을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