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법무법인 태평양은 그해 해외연수 대상에 포함된 변호사를 미국외
지역으로 강제 선택토록 했다.

국내 로펌중에는 처음으로 시도한 이 지역전문가 양성프로그램에 따라 탄생
한 변호사는 모두 5명.

중국 일본 독일 홍콩 등지에서 독자영역을 개척하라는 임무도 부여했다.

미국중심의 글로벌화에 맞춰 미국변호사 자격증의 위력이 날로 커지는
추세에 비춰 당시 이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6개월~1년간 국제변호사들과 함께 최신 금융기법및 선진법률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라는 것은 로펌은 물론 변호사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평양의 이러한 결정은 미국중심의 로펌문화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통으로 인정받는 김종길(38) 변호사와 일본전문의 이후동(36) 변호사도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흔치 않은 지역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무협지를 원어로 읽고 싶어 중국을 택했다는 김 변호사는 중국이 법률시장을
개방한 첫해인 96년 베이징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중국과의 무역분쟁 대부분을 처리하는 덤핑관련 업무가 김 변호사의 주된
일이다.

"모프텍(MOFTEC.중국 대외경제무역합작부)" 한국지사의 업무중 절반이상이
김 변호사의 손을 거친다.

아직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중국정부측 업무를 포괄해 대리하는
셈.

현재 국내법원에 계류중인 사건은 중국 건설은행의 국내투자와 관련한 분쟁
등 10여건.

물론 한국기업을 대리해 중국투자관련 분쟁해결도 김 변호사가 처리한다.

지난 92년 양국간 국교가 수립되면서 밀물처럼 중국에 들어갔지만 IMF관리
체제의 시작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오는 한국기업의 뒤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국내 본사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사업을 정리하기 위한 절차와 관련된
일이다.

현지 파트너로부터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적정한 가격을 받아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사정을 꿰뚫고 있는 상대방이 거의 덤핑수준의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
이다.

삼성물산이나 코오롱 효성등 국내 무역회사의 중국수출과 관련한 신용장대금
분쟁이 주된 일거리다.

중국금융기관의 파산문제와 얽혀있어 해결이 쉽지않다.

중국정부가 98년부터 외환업무를 지방 주정부가 운영하는 신탁회사들에까지
허용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최근에는 파산선언과 함께 국내금융기관의 채권회수에 비상이 걸린 광동투신
파산건도 김 변호사가 다루고 있다.

국내 변호사로는 유일하게 도쿄대 대학원과정을 밟은 이 변호사는 명함도
일본어판과 한국어판 두가지 종류를 가지고 다닌다.

뿐만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운영시스템도 한글윈도와 일본윈도
두가지.

일본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사건은 일본어로 의견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자판은 물론 외운다.

대학원과정을 마치면서 제출한 지식재산권분야에 대한 논문은 동기생 80명중
유일하게 "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모리소고"와 "마쓰오&고수지" "오에바시"등 일본내
10대 로펌중 5군데에서 실무경험을 마쳤다.

국내 변호사로는 유일하게 일본공업소유권법학회와 상표협회 회원이다.

일본법학계내에서도 인정받는 전문가라는 얘기다.

지역전문가인 특성상 금융 무역분쟁등 전 분야에 걸쳐 일본과 관련된
사건은 반드시 이 변호사의 사전검토를 거친다.

무엇보다 현지법에 밝고 해당지역의 특수한 사법체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다이와증권의 파산과 관련, 일본 니신보사와 한국 D사등 5~6건의
인수합병(M&A)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오리베스트와 한국카본간의 합작투자, 미치코 런던의 국내 로열티분쟁,
한국농산물유통공사 일본지사의 파산사건 등도 이 변호사가 주관하고 있다.

"한.일간의 무역량에 비춰 전문인이 태부족한게 현실입니다. 미국변호사가
대부분인 국내로펌에서 지역전문가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이 변호사가 보는 지역전문가의 위상이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