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회생 / 구조조정 전문변호사 ]

파산 등 기업의 도산 관련법률을 다루는 변호사들이라면 언뜻 "기업
장의사"라는 용어가 머리에 떠오른다.

파산 도산 등 회사정리법과 관련된 단어가 주는 강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야 변호사들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해보면 "장의사"라는 말은
쑥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들의 업무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너무나 똑같아서다.

사망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응급실로 실려온다.

진맥을 한 뒤 "댁은 법정관리로" "당신은 화의로"라며 처방을 내린다.

장기이식(외자유치)이나 절단수술(매각)도 권유한다.

그리곤 퇴원할 때까지 정성껏 치료하는게 이들이 하는 일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위기기업 회생 전문변호사" 또는 "구조조정 전문변호사"
라고 부른다.

태평양의 황의인 변호사(45)와 김&장의 정진영 변호사(38).

서울법대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들이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요즘 변호사 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류다.

금융 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고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은
회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계가 변혁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지난 97년 하반기부터 작년말까지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다.

지난해 법정관리 화의 파산 신청이 97년보다 15배 이상 늘었다니 짐작할만
하다.

게다가 모든 일이 갑자기 터진다.

응급실 의사들만큼이나 정신없이 돌아간다.

97년 12월 1일 밤 9시 30분 정 변호사 방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선주조의 최병석 회장.

첫 마디가 "부도나게 생겼다"였다.

정 변호사는 부리나케 팀을 구성해 대선주조 서울사무소로 내달았다.

119구조대와 별반 다를게 없다.

현장 도착시간은 밤 11시.최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당장 모든 재무자료를 넘겨 받았다.

그날부터 밤샘 작업이었다.

"모기업인 대선주조는 괜찮았는데 스키장비사업과 모니터사업이 부실을
떠안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를 정리할 것을 권했지요. 대선주조는 화의를
신청했습니다"

대선주조는 화의가 결정돼 지금은 채무를 제대로 갚아나가며 안정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지금 영업이익 정도면 7년정도면 정상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게 정
변호사의 판단이다.

정 변호사가 이렇게 치료한 환자는 뉴코아 기아 한라 삼미 삼익악기 등
헤아릴 수가 없다.

모두 응급실로 실려왔지만 몇몇 환자를 빼곤 고비를 넘겨 치료단계에 있다.

황 변호사를 찾은 환자 역시 많다.

말썽 많던 논노를 비롯해 우성 거평 일화 진로 엘칸토 삼도물산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 분야 전문변호사들에겐 기업의 회생만큼 반가운일이 없다.

소송 전문 변호사들의 승소에 비길 것이 못된다.

경영권에 큰 변화 없이 기업을 치료한다는건 더욱 기쁜 일이다.

그런 면에서 황 변호사는 법전 속에서 잠자던 화의 제도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는 자부심에 뿌듯하다.

지난 93년 일본 게이오대학 객원연구원 시절 일본의 화의제도에 관심을
가졌던게 출발점이었다.

한국 기업현실에 꼭 맞는 이 제도가 국내에선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다는게
안타까웠다.

관련 자료를 수집해 귀국한 그는 당장 법원으로 달려갔다.

법원도 황 변호사의 권유에 큰 관심을 가졌다.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그를 화의관재인 및 정리위원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그 후 진로등이 화의를 신청하기 시작하면서 이 제도는 법정관리에 버금
가는 기업회생책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한 셈이다.

지금 화의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의 대주주들에겐 황 변호사가 구세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항상 즐거움만 있는건 아니다.

환자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거나 수술 후유증을 못이겨 사망할 때는 괜한
전문분야를 택했다는 자괴심에 꽤나 술을 마셔야 했다.

황 변호사는 (주)흥양 때문에, 정 변호사는 청구주택 때문에 속을 앓았던
얘기를 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자신들이 바쁘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바쁘다는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 분야가
바쁘다는건 그만큼 나라 경제가 좋지 않다는게 아니겠어요. 이제 그만 정상
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황 변호사의 솔직한 심정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산업1부) 김문권 류성 이심기(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