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진보는 대체로 불평등의 결과이며, 또 그것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급속한 진보는 균일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일부가 나머지 사람보다
훨씬 앞서가는 단계적 방식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 중에서 >

-----------------------------------------------------------------------

하이에크는 경제학자인 동시에 자유주의 사상가이기도하다.

그의 대중적 명성은 일차적으로 후자 측면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경제학, 특히 자신의 시장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시장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자유주의를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구성 원리를 주장하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하이에크의 시장자유주의는 그러한 사회구성원리의
이상적 모델을 시장에서 찾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시장속에서 개인들은 사유재산제도나 공정계약과 거래 등 시장의 규칙을
따르는한 누구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각 개인들은 자신의 선호와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적
수단(부)을 시장을 통해 확보하게 된다.

시장이 제공하는 수단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만의(비경제적인 것을 포함하는)
고유한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사회전체로 볼 때 각기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따라서 필연적으로
갈등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다양한 삶이 시장을 통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시장질서가 이처럼 상이한 목적들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시장이
상이한 구체적 목적들 그 자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 달성을 위한
경제적 수단을 조정, 배분하는 메카니즘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지닌 구체적 목적들의 충돌을 직접 조정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침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을 내세우면서 최소한의 국가의 개입을 승인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요구하는 구체적 목적들은 궁극적으로는 비경제적
가치들인 반면, 그러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시장에서 확보된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성패는 비시장적 영역에서 개인들이 추구하는 구체적
목적을 제약하게 된다.

또 수단인 시장적 가치가 목적인 비시장적 가치를 종속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자유주의) 사회는 시장이 다른 모든 사회적 영역을
포섭하고 지배적 위치에 서게 되는 물신성의 사회인 것이다.

다른 한편, 시장은 자유로운 개인들간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시장에서 개인은 자신의 행위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뿐아니라 선택과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진다.

또 시장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각 개인들은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한다.

시장경쟁의 결과, 이 사회는 다른 사회형태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된다.

사회의 기본적 발전동력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창조적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쟁에서 찾아진다는 점에서 (시장)자유주의 사회는 개인주의
사회이자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다.

시장경쟁이란 승자와 패배자를 가르는 절차이기도 하다.

누구나 시장의 판정에 복종해야 한다.

만약 승자와 패자를 제대로 가르지 못한다면 그 경쟁은 효과적이지 못한
것이며 경제적 진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경쟁은 패배자를 항상적으로 산출해 내기 마련이다.

시장 또는 자유주의 사회가 약자에 대한 동정이 금지된, 승자만의 비정한
불평등 사회라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김균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kk0420@mail.hitel.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