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는 그냥 산마루가 아니다.

그 곳에는 길손들의 슬픈 사연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인생의
맛이 깃들어 있다.

고개는 이별하는 곳이면서 상봉하는 곳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우리들 삶의 행로와 너무 닮았다.

시인 김하돈씨가 펴낸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실천문학사)에는
사람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빚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담겨있다.

그는 틈만 나면 살림살이를 차 트렁크에 싣고 집을 나서 한 열흘씩
이 고개 저 고개를 누빈다.

특히 한반도의 척추뼈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의 열다섯 고개를 넘나들며
거기에 얽힌 애환과 전설,지명유래 등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감칠 맛 나는 글도 글이지만 1백50장의 사진과 지도는 얼마나 많은 품이
들었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김씨의 고개 탐사는 남한땅의 가장 북쪽끝 고개인 진부령에서 시작해
금강산과 설악산을 나누는 미시령, 눈꽃피는 남설악의 한계령, 대굴대굴
굴러서 넘는다는 대관령, 문닫고 세상과 돌아앉은 아라리고개 싸리재로
이어진다.

그의 발길은 비바람속의 장승과 주막이 있는 죽령이나 문경새재,
삼국시대의 천연요새인 화령,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
60명이 모여야 간다는 도적고개 육십령과 영호남 관문인 여원재까지 닿는다.

그는 한 고개를 10번 이상씩 찾아 그곳에 감춰진 사연들을 하나하나
들춰낸다.

무수한 고개를 넘어야 하는 인생살이의 애잔함이 시인의 감수성을 타고
더욱 깊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지난 세상과 다가올 세상을 이어 우리의 삶을 둥글게 만드는
고개야말로 추억과 희망, 반추와 응시가 서로 부닥치는 교착점"이라며
"못가본 북녘 고개들을 채워넣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