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 한양대 교수/경제학 jwk569@chollian.net >

노사정위원회에서 민노총이 탈퇴함에 따라 노동문제의 완충적 역할을
담당하는 노사정위원회가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노조측의 탈퇴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유인책을 동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조측이 탈퇴위협을 한다고 해서 정부의 전반적인 경제운용정책에
대한 사전협의 또는 합의사항의 입법화 주장 등을 수용한다는 것은 국회의
기능을 간과한 월권행위이며, 현행 노동관련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민노총이 탈퇴를 선언했다고 해서 정부가 노측에 더 이상의 유인책을
주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민노총 역시 과거에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를 결정한 후 지도부가
재선에 실패했기 때문에 정부가 다양한 유인책을 제공했더라도 지도부의
선명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실상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재계 역시 과거에도 노조 탈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노측에 지나치게
많은 "당근"을 주었다는 불만과 구조조정을 수용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더이상의 양보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을 것이다.

특히 재계는 정부가 노측을 끌어안기 위해 과거 노개위에서 힘들게 합의해
입법화된 부분까지 양보해야할 경우를 무엇보다 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향후 노사정위원회의 운용이 순탄치 못할것이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졌다고 보여진다.

민노총은 구조조정 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협의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어렵고 국가경제적 측면에서 보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나 국민경제 측면에서 보면 노동시장의 유연성, 특히 고용조정의
원활화는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름하는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노사정위원회의 진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다.

97년말 대선시 대통령후보자들은 당선이 되면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협상이나 타협을 어용시하는 풍조, 선명성 경쟁,
정부의 지나친 노사문제 개입에 따른 자율적 교섭능력의 저하, 윈-윈
(win-win)정신에 대한 이해부족, 노사간 양보적 교섭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노사정위원회의 기본정신인 삼자주의의 후진성을
초래해 노사정위원회의 운용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향후 노사정위원회가 노동문제에 대한 협의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위상 강화 또는 법적 구속력의 여부 등 보다는 삼자주의의
작동이 더 중요시되어야 하며, 노사정위원회의 운용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나
역할은 최소한도로 축소되는 것이 바람직함을 시사한다.

정부 언론 중산층은 노사관계의 갈등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발휘할 것이 기대된다.

향후 노사정위원회의 운용과정에서 정부는 노사양측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항에 대해 게임의 룰을 중시하면서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러한 조정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노사정보다는 노.사.공익
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할수록 오히려 노사 양측 모두 근로자나
재계를 의식해 집단적 이기주의와 선명성 경쟁을 강화하는 부정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이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제 역할
을 담당해야 한다.

노측과 사측은 자율적 교섭능력의 증대, 양보적 교섭의 수용및 노사가 서로
승리하는 윈-윈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정부는 노사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간접적인 조정기능을 수행하고
법정신을 존중하며,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노사정 또는 노.사.공익간의 삼자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힘에 의한 설득(persuasion of economic power)"보다는 "경제적
설득의 힘(power of economic persuasion)"에 근거한 삼자주의가 원활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21세기를 앞두고 우리 경제의 위기가 가시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민노총은
하루속히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