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경제위기는 비민주적인 통치구조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야 센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경제
발전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아시아 지역이 한순간에 경제위기를 맞게된 원인은
국민의 언로를 막고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한 정치구조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또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분리될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해서도 명백히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발전에도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센 교수가 26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국제회의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내용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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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의 몰락 등이 그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나라를 근대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경제발전이 먼저이고 민주주의는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민에게 나눠줄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논리다.

이같은 생각은 민주주의의 장점을 망각한 상당히 위험한 주장이다.

민주주의가 갖는 의의는 여러 가지다.

먼저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둘째로 사회.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마지막으로 가치와 규범을 창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크게 세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존중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한다.

또 민주주의는 선거절차를 통해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 사회.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개인의 행동과 정부 정책의
기반이 되는 가치와 규범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언론의 자유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가능한 민주체제는 갖가지
재앙의 위협에서 일반 국민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인도는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체제하에서 언로가 열려 있어 기아 등 대규모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아시아 경제위기를 보자.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근본적으로 비민주적 통치구조의 경직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권위주의적 통치가 경제발전에 더 효과적이라는 이른바 "이광요 가설"은
아시아 일부 국가의 제한된 사례에 기초한 것에 불과하다.

비교분석의 범위를 확대할 경우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소위 아시아적 가치가 자유보다는 질서와 규율을 중시한다는 주장
역시 불교는 물론 유교전통에도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자유와 인권 개념을
무시한 것일 뿐이다.

현재 아시아 경제위기는 금융자원 배분에 대한 공공의 감시와 비판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기가 발생한 지금이라도 일반 국민이 겪는 고통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사회 발전을 위해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활용은 사회 가치와 규범, 궁극적으로는
정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시장 메카니즘 그 자체를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삼았다가
심각한 폐해를 일으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따라서 시장 메카니즘이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도 사회 가치와 규범이 존중되어야
한다.

민주적 합의 과정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재체제하에서는 명령에 따르면 됐다.

그러나 민주체제는 시민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신뢰와 정의가 존중되는 사회문화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모두 앞에 놓인 과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