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장 >

삶이란 이런 저런 일상사와의 끊임없는 마찰로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진
마룻걸레처럼 곧잘 너저분해진다.

그러나 마치 어제가 그러하듯 삶은 때로 황홀한 순간을 제공한다.

봄이 한걸음 앞으로 그리고 두걸음 뒤로 뒷걸음치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오후 졸린 눈을 뜨고 우편함을 여니 편지가 하나 와 있었다.

사랑하는 xx에게로 시작한 편지는 설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차창 안팎을 보며 일어나는 심상을 담은 아름다운 장문의
글이었다.

친구는 무궁화호를 타고 간 것이다.

친구는 이원역을 지나며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끝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면서는 귀가 멍멍해지고 정말 밤이 왔는 줄 믿었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닐하우스안에서 따뜻하게 자라고 있는 딸기이야기, 줄줄이 이어져 있는
작은 동산들과 어우러진 촌스러운 양철지붕들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촌스럽다는 말이 그렇게 화려하게 살아날수 있는 것이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다가오는 황혼에서 무지개 빛을 건지고 생각보다 빨리 드리워지는 어둠을
온몸으로 느끼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기억이 다시 인다.

나르시시즘마저도 가라앉은 것같은 어느 봄날 폭신폭신해진 땅을 밟으며
땅속의 싹들이 정말 뚫고 나올수 있을까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시절,
어딘가 양지바른 모퉁이에 앉아 방금 빨아 넌 하얀 이불 호청을 보듯 나도
깨끗하고 순수한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근처에 있는 의릉을 향했다.

땅은 폭신폭신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힘이 없지만 조용한 음영의 공간들이 곧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넓은 잔디위에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누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너그러움이 봄소식과 함께 저절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