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실장 >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재벌의 개혁은 빅딜이 전부가 아니다"고
밝혔다.

"기업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책이 강도높게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는 5월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각료이사회를 열고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채택할 예정이고, 이에앞서 정부는 오는 3월 기업지배구조개선
위원회를 민간위원회 형식으로 설치할 방침이기도 하다.

OECD의 가이드라인은 그 성격상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는 글자 그대로
가이드라인이지만, 국제적으로 이런게 나온다는 것 그 자체가 국내에서
작년부터 강조되고 있는 기업투명성에 대한 목소리를 더욱 높이게 되는
계기가 될 것 또한 확실하다.

사외이사제(현재 이사수의 25%이상)가 확대될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고,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증권집단소송에 관한 법률" 등 소액주주 권한
보호를 위한 제도들도 시류를 타게될 가능성이 크다.

결산서로 보면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빚밖에 없다는게 드러난 은행.기업이
한둘이 아니고 보면, 기업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제도가 과연 그런 기업비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인지, 우리 현실에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사외이사제는 작년에 비상경제대책위가 제도화했다.

지금은 이사수의 25%(최소 1인)를 선임하면 되지만 사외이사를 과반수이상으
로 늘려 이사회가 사외이사 중심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일부 은행들이 이사회를 그런 형태로 바꾸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일반기업
들도 자의든 타의든 비슷한 변화를 나타내게될 가능성 또한 적지않다.

몇몇 대기업 그룹에서 법적인 이사(등기이사)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한 일이 결코 아니다.

작년중 선임된 상장기업 사외이사중 13%에 해당하는 85명이 본인 희망에
따라 1년도 안돼 퇴진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까닭은 간단하다.

실제 권한이나 보수에 비해 책임져야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금사정이 좋지않은 기업이면 특히 그렇다.

"2백만원 "월급" 받으려다 집 날릴지도 모르는 일 왜 하느냐"는게 자퇴한
사외이사의 설명이다.

물론 사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몇몇 대기업그룹은 사외이사의 책임을 배상해줄 보험까지 들어준다.

이런 경우 사외이사가 되려는 경쟁은 당연히 치열하다.

기업도산이나 소액주주들의 대표소송 등에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간 책임에
차이가 없고 보면 이같은 보험가입이 현실적으로 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을 날릴 위험이 있는 사외이사"도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않아도 되는 보험가입 사외이사도 따지고 보면 문제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정부가 요구하는 사외이사의 역할은 대주주견제다.

그러나 지금 여건아래서 사외이사에게 그걸 요구하는건 애당초 무리다.

바로 그래서 일부에서는 주주의결권의 누적투표제도입 등으로 소액주주에
의한 사외이사선출, 또는 근로자대표가 참여하는 독일식 감독이사회 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적 기업문화를 감안하면 비현실적이고 부작용만 두드러질 제도지만,
이런 유형의 관념적인 주장들이 시류를 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또
그래서 걱정스럽기만 하다.

기업에 대한 투명성 요구는 현실에 맞게 그 내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재무제표의 신뢰성 확보에만 목표를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것은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만 제대로 운용해도
가능하다.

7년간 4조5천억원을 분식한 기아.아시아자동차 외부감사를 맡았던 공인
회계사에게 "감사업무정지 6개월 직무연수 12시간"을 처벌이라고 하는 식의
법률운용이 결산서를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증권선물위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할 수도 있게 규정하고 있다.

법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빚어진 사안을 엄청난 비용을 강요하는 복잡한
제도로 풀려고 들어서는 안된다.

집단소송제도 굳이 도입한다면 부실 외부감사에 한해 허용, 그들의 책임
의식을 일깨우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타당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