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장 >

설날이라는 말은 내게 세배라는 말과 통한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8남매를 둔 가족의 일원이었다.

이러한 가족의 셋째 아들과 셋째 딸이 남남북녀로 만나 이룬 가정의 막내가
본인이었다.

설날이 오면 그래서 나는 늘 바빴다.

새벽같이 일어나 나는 어머니 앞에 앉는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정성껏 땋아주시고 그 밑에 빨간 댕기를 매주셨다.

어린 시절 크는대로 매해 사주시던 한복을 나는 입는다.

그리고 오빠들과 함께 할머님댁으로 간다.

삼촌들과 고모가 모두 와 계신다.

우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가족들은 예배를 보고 찬송을 한다.

그리고는 할머니께 어른들과 아이들이 차례대로 세배를 드린다.

그리고 아이들은 또 큰아버지부터 세배를 드린다.

나의 아버지를 포함해 여덟분께 세배를 다 드리면, 그 다음은 큰집에 시집간
누님 가족 등 그 다음 어른들께 또 세배를 드린다.

각 집안의 아이들이 각각 그렇게 세배를 돌아가며 다 하는 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외가에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모든 순서가 끝나고 함께 먹는 음식은 정말 꿀맛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설날은 늘 노곤한 잠으로 막을 내리곤 했다.

나의 할머님들은 다 돌아가셨다.

그리고 친가와 외가의 어르신네들도 이제는 너무 늙으셔서 각각 가족 단위로
설을 보내신다.

시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친정 부모님밖에 나는 세배드릴 데가 없다.

대신 나는 매해 몰라보게 커가는 조카들의 세배를 받는다.

이제는 그들의 설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나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그들을 반가이 맞는다.

옛날 친척들이 그랬던 것처럼 설을 이어가는 일이 내 몫이 되어가고 있다.

세배하는 조카들 속에 내가 보이고,나의 할머니가 보이고, 할머니의 어머니
가 보인다.

왜 우리에게 세배하는 풍습이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지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내 조상의 사랑이 오늘까지 우리를 지탱해준 중요한 버팀목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