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쑥 내놓은 한자병용 추진방안을 놓고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한글학회 등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관련단체들은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어
서 철회돼야 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한국
어문회 등은 문화관광부의 정책방향을 환영하면서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내놓은 한자병용 추진방안은 <>정부공문서에 혼동하기 쉬운
한글에 한자를 병기하고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함께 쓰며 <>교육용 한자
1천8백자를 사용빈도수에 따라 재조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우리는 정부의 그같은 한자병용 방침을 여러가지 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정부 설명대로 한자문화권 국가간 교류증대는 물론 관광
진흥에 도움이 될 뿐아니라, 한글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지명 인명 용어
등에 대한 해석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한글과 한자를 동시에 표기하는
한자병용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자로 기록된 우리의 역사와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해묵은 한자혼용론자들의 주장까지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동일한 한자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이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유독 우리만이 한자사용을 완전히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특히 경제적 거대시장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중국과의 교류확대를
생각하면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번에 정부가 한자병용을 추진하는 절차와 방법에 있어서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국민들의 언어생활과 경제활동에 크나큰 변화를 몰고
올 중요한 정책을 충분한 여론수렴과 토론절차 없이 불쑥 발표한 것은
잘못이다. 행정부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려 있고, 심지어 문화관광부의 자문
기구인 국어심의회에서 조차 충분한 의견수렴을 하지않았다는 점은 졸속추진
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당장 그같은 안을 실천에 옮기자면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간판을
고치는데 드는 비용이나 시간은 지엽적인 문제다. 교육정책과의 연계추진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차 한자교육을 어떻게 할 것이며 한자병용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방향과 필요한 조치가 동시에 마련되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의견수렴과정은 과거와 같은 명분싸움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먼 국가장래와
오늘의 생활현실이 함께 감안돼야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글전용과 국한문혼용의 논란은 수시로 제기돼왔으나
논리싸움에 그쳤다. 이번에도 그같은 소모적 논쟁이 재연된다면 어문정책의
혼란만 자초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어문정책의 방향을 확실하게 재정립하고
일관되게 지켜나갔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