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장 >

지식기반경제가 요즘 한창 뜨고 있다.

개인 기업 국가간의 경쟁에 있어 지식의 정도가 우열을 가름하기 때문에
지식기반경제의 구축은 현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나 경제재도약의 기반
마련을 위해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그래서 요즘 신지식인 지식경영 지식국가란 말이 같이 뜨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선 지식기반경제를 지식과 정보의 생산 배분 활용
에 기반을 둔 경제라 정의했는데 쉽게 말해 지식의 비중을 높여 부가가치를
최대화하는 경제라 할 수 있다.

21세기 국가의 성쇠는 얼마만큼 지식자원을 잘 조직.활용하느냐에 결정될
것이다.

지식용량의 확장과 더불어 좋은 네트워크를 통해 유무상통해야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산업의 발전과 기존산업의 지식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성장및 고용에 있어 물적 투입보다 지식의 기여도가 더 커지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지식기반경제는 지향해야할 방향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신기루를 쫓기 쉽다.

또 단시일내에 급하게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얼마전 세계화에서 그런 쓴 경험이 있다.

세계화를 문호개방으로만 생각해 너무 서두른 결과 환란을 맞았는데 지식
기반경제도 물적 투입으로 해결하려 하다간 다시 한번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정보고속도로와 근거리 통신망을 깔고, PC를 대량 보급하고, 이동전화와
전자우편을 많이 쓴다고 해 지식기반경제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일 뿐이다.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느라 우루과이라운드 대책비처럼 엉뚱한 투자를 하기
쉽다.

지식기반경제에 알맞은 사고방식과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이른바 경제의 지식화 정보화를 위한 기초조건이 돼야 하는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가 합리정신이다.

지식경제란 세계적 보편성을 필요로 한다.

국경과 장벽없이 지식이 넘나들어야 하고 또 최대의 효율로 배합돼야 한다.

그러려면 상식이 통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상식이 뒤죽박죽되어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합리적으로 접근해 토론 협의 해결하는 시스템이 안돼
있다.

가령 환란청문회만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

환란의 원인을 규명해 재발방지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 주목적인데 결과는
어떤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청문회란 용어가 한국에선 다른 뜻으로 쓰이고 해석
된다.

시장경제 규제완화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영역을 함부로 넘나들고 프로의 평가기준도 없다.

이렇게 기초부터 안돼 있는데 어떻게 합리와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
경제가 가능하겠는가.

둘째 전통과 기록이 존중되는 풍토이다.

지식경제란 평지돌출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쌓이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 전통이 너무 부인되고 파괴되는 것 같다.

과거의 것은 모두 잘못되고 나쁜 것으로 치부된다.

물론 시스템이나 제도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바꿔가야 한다.

좋은 것은 살리고 나쁜 것은 바꾸면서 사회의 지식을 계승, 축적해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못했기 때문에 환란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과거를 깡그리 부인하고 파괴하는 것은 지식경제와는 다른 길이다.

실패한 경험도 자산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이다.

지식경제는 백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재개발사업이라 볼 수 있다.

헌 틀을 파괴하되 더 효율적인 새 틀이 준비돼야 뜻이 있을 것이다.

셋째 지식경제의 원천이 되는 지식계가 교통정리돼야 한다.

지금은 옥석이 마구 섞여 뭐가 뭔지 모르게 돼 있다.

지식인을 편의적으로 나눠 지성적 지식인, 전문적 지식인, 운동가적 지식인
으로 구분한다면 전자는 희귀하고, 중간은 너무 적고, 후자는 너무 많다.

지식경제의 큰 장애는 바로 지식층의 얇음과 폐쇄성이다.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지식권력도 통풍이 안되면 부패하게 마련이다.

요즘 대학사회와 연구계가 과연 지식기반경제를 떠메고 갈 수 있을까.

지식인들은 천하대세를 논하기 앞서 스스로의 영역에 대한 정화작업이 더
시급할 것 같다.

지식기반경제의 길도 저 멀리 높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체가 없는 무지개를 쫓아다니기 보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
하는 것이 지식경제를 앞당기는 길일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