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리본으로 느슨하게 묶는건 어때. 자연스레 풀어지도록 해서 말이야.
참, 탄력 스피드 시선처리에 좀 더 신경써야 하는 거 알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땐 특히 유념해야 해"

지난 8일 홍대앞 산울림소극장 2층 연습실.

연극인 박정자(57)씨가 함께 무대에 오를 신예 유망주 우현주에 대한 짤막한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상대를 압도하는 굵직한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30년이 넘는 연기
인생을 살아온 그만의 "광기"가 활화산 처럼 분출된다.

작품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21일~3월28일).

극단 산울림이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명무대 시리즈" 1탄이다.

91년 초연당시 그가 주인공을 맡아 장장 8개월동안 5만여 관객을 사로잡았던
화제작이다.

무대는 중하류층 유태인 가정의 불기없는 거실.

침대위에 누워있는 엄마(박정자)의 주검과 지난날을 회상하며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딸(우현주)의 표정없는 타자소리가 썰렁하다.

딸은 엄마에 대한 애틋한 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유태인 전통축제인 하누카축제 기간중의 어느날 식사를 마친 딸이 나가
살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모녀간에 말다툼이 벌어진다.

"엄마는 폭군이예요. 시시콜콜 간섭하고 매일 돈얘기만 하고... 이젠
넌덜머리가 나요. 나가 살거예요"

좁은 어깨를 움츠고 앉아 볼을 긁적대며 딸의 원망을 받아내는 엄마.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글썽인 채 딸을 향해 퍼부어 댄다.

"그래, 바라는 것 하나없이 너희들 키우느라 모든 것을 바쳤는데 결과가
이거란 말이냐. 가, 갈테면 가란 말이야"

결국 딸은 독립해 살고, 엄마는 큰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하게 된다.

딸은 자신의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홀로 먼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딸을 맞이한 것은 엄마의 싸늘한 주검이다.

다리가 아프다면 주물러 주고, 볼을 비비며 응석을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은
이젠 먼 기억속에만 있을 뿐이다.

박정자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부딪치고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보이겠다"고 말했다.

드니즈 샬렘 작, 임영웅 연출.

화~목 오후 7시, 수.금.토 오후 3시,7시, 일 오후 3시(월 쉼).

334-5915.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