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사다난했던 작년은 한국경제의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고비였다.

국가 부도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지, 금융기관이나 기업등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등을 판가름한 한해였다.

다행히 외환위기를 모면하고 금융및 기업구조조정도 어느 정도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에서부터 폭발 직전의
실업문제를 해소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풀어야할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환 안정을 지속하면서 금융및 기업구조조정을 말끔히 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올해는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해로 한국경제가 재도약의 발판을
다져야하는 시기다.

지난 한햇동안 한국경제가 대수술을 받았다면 올해는 비교적 수술을
잘 끝낸 환자가 병상에서 내려와 다시 뛸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짓는 회복
단계다.

이때가 어쩌면 수술때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한국경제가 정상 회복돼 21세기를 향해 질주하려면 반드시 풀어야할
5대 과제를 짚어본다.

1) 경기 본격 회복하나

새해에 가장 우선적으로 꼽히는 과제다.

지난 한햇동안은 외환위기 극복과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 실물경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98년 국내 경제는 18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침체를
맛봐야 했다.

공장가동률은 60%대로 떨어졌고 소비도 극도로 위축돼 있다.

일부에선 디플레이션(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한 불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선 구조조정을 성공시키더라도 경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신년엔 디플레이션을 막는 적극적인 경기진작책이 긴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가 올 경제운용계획의 기본 목표를 경제활성화에 두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는 경제여건상 수출과 기업 설비투자가 힘들다고 보고 부동산및
건설부문을 시발로 내수경기를 본격적으로 부양할 태세다.

이같은 경기진작 방법론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에
경기를 되살려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선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2) 구조조정 마무리될까

작년말로 금융및 기업구조조정의 윤곽이 잡힌 것은 확실하다.

이제 문제는 계획대로 얼마나 잘 진행시키느냐다.

특히 기업구조조정이 그렇다.

5대그룹의 재무구조 개선과 대규모 사업교환(빅딜)등은 계획만 잡힌 것이지
실행은 올 한햇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우선 재무구조 개선의 경우 5대그룹은 올해말까지 그룹 평균 부채비율을
2백%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5대그룹은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을 통해 23조원 가량을
조달하고 2백15억달러의 외국자본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현재 2백72개에 달하는 계열사는 1백36개로 줄이기로 했다.

5대그룹은 이같은 계획을 채권은행과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에 담았다.

또 석유화학 철도차량 발전설비 등 주요 업종의 빅딜을 단행키로
해당기업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렇게 되면 5대그룹은 지난 30년간의 선단식 경영에 종지부를 찍고
주력업종 중심의 독립 계열기업연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3) 고실업시대 대응은

1백50만명 선을 넘어선 실업자를 안고 어떻게 경제를 운용해나가느냐도
새해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 7월 1백65만명을 초과했던 실업자 수는 공공근로사업 확대 등으로
인해 작년말 1백50만명 선에 머물러 있긴 하다.

그러나 올 상반기엔 실업자가 1백80만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노동연구원)

기업구조조정이 계속되는데다 2~3월께 학교를 졸업하는 신규 인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가 일찍 회복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 상반기엔 그야말로 "실업대란"이 예상된다.

또 기존의 실업자들도 실업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사회문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를 잃고도 당장은 퇴직금 등으로 버틸 수 있지만 실직기간이
길어질수록 돈도 떨어지고 재취업의 희망도 희미해져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한국경제도 이젠 "고실업 시대"를 맞은 만큼 이에 걸맞은 경제운용이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실업은 사회문제일 뿐 아니라 자칫 노사관계 악화로 번질 수 있는
폭발력을 안고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 실업대책을 사회안전망 확충과 협력적 노사문화
정착에 맞춰 추진할 계획이기도 하다.

4) 외환시장 안정되나

가용 외환보유액이 작년 12월15일 현재 4백87억7천만달러를 기록하고
원화가치도 달러당 1천2백원선에서 안정돼 외환위기감은 상당히 해소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이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중 만기가 돌아온 IMF차입금
28억달러를 제때 상환함으로써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정부는 올해에도 IMF차입금 등 외채를 갚고도 1백억달러의 외환순유입이
예상돼 가용 외환보유액이 5백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수급에 관한 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직도 1천5백억달러를 넘는 외채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도 여전히 지뢰처럼 깔려 있다.

따라서 새해엔 외채규모를 최대한 줄이고 외채만기 구조도 장기화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대부분 빚으로 쌓아 놓은 외환보유액을 보다 안정적인 돈으로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선 경상수지 흑자를 늘리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확대하는 게
관건이다.

정부는 올해중 경상수지가 2백억달러 흑자를 내고 외국인 직접투자도
1백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실현 여부가 과제인 셈이다.

5) 21세기 준비 어떻게

올해는 21세기를 준비하는 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당장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을 치유한 뒤 어떤 에너지를
얻어 뛰느냐도 중요하다.

어떤 산업을 국가경제의 견인차로 활용할 것이냐하는 문제다.

정부는 일단 21세기 한국의 산업구조를 지식기반산업 위주로 전환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중화학공업 위주에서 탈피해 정보통신 등 첨단 지식기반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소위 "신산업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다소 논란이 있다.

과학기술 바탕과 내수기반이 빈약한 상황에서 말만 그럴듯한 지식기반
산업을 키우기보다는 기존의 주력산업인 중화학업종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지식집약화하는 게 더 현실적이란 지적도 있다.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전략산업 고도화론"이다.

어쨌든 정보화 지식화 글로벌화가 대세인 21세기에 한국이 어떤 산업을
주무기로 삼아 세계 경쟁에서 싸워나갈지를 이젠 결정해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