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을 즐겨 탄다.

시간이 절약되고 무엇보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전천후로 달려 모든 약속시간에 댈수 있어서 좋다.

열차가 역사로 들어오기 직전 뚜우- 하는 짧은 신호음은 시공을 뛰어넘는
추억여행같다.

유년기에는 기차역을 자주 서성거렸다.

기차가 검은 몸체를 뒤틀며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까닭모를 설움에 젖어
손을 흔들고는 했다.

이런 아련한 기억을 연상케하는 지하철이 좋다.

시를 쓰다가 잘 나가지 않을 때 나는 무작정 지하철을 탄다.

종점에서 내리지 않고 한바퀴 비잉 돈다.

이때 지하철은 내 상상력을 높여줄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미니 콤팩트디스크를 귀에 꽂은 날이면 금상첨화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고전음악 감상실이 되기도 한다.

겨울빛이 짙어져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지하철을 꽉 메운 이런 이들로 인해 내 마음도 겨울을 탄다.

계절마다 또 다른 모습의 배경으로 오는 감각.

이런 감각은 삶을 정말로 역동적이게 한다.

이런날 자욱이 눈발이라도 내리면 아,살아있다는 사실의 고마움이여! 하고
무의식중에 탄성을 발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삭막한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
또 지하철이다.

이젠 쉽게 노인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얼마전까지 8명도 끼어앉던 좌석이 7명이 앉게 되었다.

6명이 앉아있는 모습을 본 어느 중년이 "아 조금씩만 좁혀 주실까요?" 한다.

그리고 거의 앉을 자세를 취한다.

중년의 남자가 무안을 당한 것은 그렇게 정중하게 말을 해도 좁혀지지 않는
사람들의 무표정이다.

정물처럼 꿈쩍도 않는 사람들을 보면 오늘의 세태가 한눈에 드러나는
듯하다.

서로가 바쁘게 살아 피곤해서 편안해지고 싶은데 왠 말이 많으냐는 듯한
표정이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도 꿈쩍않는다.

아예 눈 감고 앉아 상대편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주 작은 이기심들을 충족시키는 모습들을 보면 슬퍼진다.

지하철에서는 서있는 자의 편안함을 누리겠다고 한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를 자기로서 버티고 주장하는 모습이 공공장소에서는 그렇게 이기적이
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