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가 역사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
만 나는 평소에 역사드라마를 잘 보지도 않거니와 보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역사드라마를 보게 되는 경우도 글을 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보는데
뒤끝은 항상 개운하지 못하고 언짢은 기분이 되고 만다.

그런데 역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회과학을 하는 교수님도 나와 거의
같은 기분을 이야기하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만 나쁜 것이 아니라
화가 치밀어 견디기 힘들다고 개탄하는 것을 본다.

나의 역사드라마 기피증이 역사학자로서의 오만이나 편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요즈음 방영되고 있는 "왕과 비"라는 드라마는 주지하다시피 "용의 눈물"의
성공에 힘입어 그 후속편의 성격을 갖고 출발하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세종대의 문물제도 정비나 태평성대를 위한 문화정치의
지향성 등을 밀도있게 다루는 드라마가 후속되어야 했지만 중도 생략되고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정으로 간 것 자체가 이 역사극의 역사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왕과 비"라는 제목 자체에 이미 갈등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왕이 되려는 수양과 막으려는 비가 유약한 단종을 둘러싸고 벌이는
권력투쟁의 과정이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계유정난(1453년)으로 희생된 김종서 같은 충신조차 권력을
추구하여 왕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처럼 묘사하여 시청자들을 오도하였다.

"용의 눈물"이 건국초기에 국가체제를 세우기 위하여 분투하는 과정이어서
생동감이 넘치고 재미있었지만 세종대를 다룰 후속편은 세종이라는 성군의
통치에 힘입어 큰 갈등구조 없이 밋밋하게 전개될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
이다.

따라서 시청률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아예 생략하고 그 다음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수양대군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능력의
한계라고 밖에 달리 이해하기 힘들다.

사건의 연속인 난세를 그리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치세를 그리기 위해서는 작가나 PD, 그리고 출연자들은 물론 관련자
모두의 뛰어난 역사의식과 세련된 문화감각이 필요하다.

우리가 치세를 살아보지 못했다고 하여 치세를 그리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치세를 그리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리는 이상향이 없기 때문
이요, 꿈이 없기 때문이다.

난세일수록 치세를 그리워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정서다.

시청자가 좋아하리라고 여겨 무엇을 위한 왕권이며 권력인지 분명히 밝히지
도 못하면서 사극을 권력투쟁의 장으로 그리거나 궁중야사로 격하시키는
행위는 아무리 시청률이 절체절명의 과제라 하더라도 시청자를 우롱하고
방송의 공기로서의 역할을 망각한 몰지각한 행위이다.

전통시대에도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왕과 비"의 주제인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2세기 반이
경과한 숙종대에 가서야 종결되었다.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단종이 1698년(숙종 24)에 복위되고 단종이라는
묘호도 이 때에 비로소 추증되었던 것이다.

또한 격살당한 김종서에 대한 복권은 1746년(영조 22)에야 이루어졌으니
무려 3세기가 걸렸던 것이다.

이는 물론 역사의식의 문제이기 전에 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문제가
되어서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지만 한번 왜곡된 사실의 제자리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증이다.

몇백년이 걸려서라도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올바른 역사의식의 고취에
부심하였던 조선왕조의 생명력의 원천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사드라마가 제자리를 찾아 국민의 역사의식 제고에
한 몫을 하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거창한 역할까지 감당하지는 못하더
라도 적어도 국민의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오도하는 행위는 삼가야 할
것이다.

역사드라마도 갈등과 투쟁의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