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가 지난해 8월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 반덤핑 조항의 부당성을
제소한 결과 최근 우리측에 승소판정이 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번
판정이 지난 92년 4월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미국 마이크론사의 반덤핑
제소로 시작된 한.미간의 반도체분쟁 뿐만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또다른 통상마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정부와 업계는 이번 판정을 계기로 외국과의 통상마찰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이번 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이 상소할 가능성이 있어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또한 이번 판정은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제도에 문제가
있으니 시정하라는 권고일 뿐이며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조치 철회와는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미국측은 이미 지난 9월 4차 연례재심에서 현대전자에
3.95%, LG반도체에 9.28%의 높은 덤핑마진율을 확정했기 때문에 당장은
한국산 반도체의 대미 수출증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이번 승소판정이 별로 의의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선
미국의 반덤핑규제 남용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측은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 3년 연속 0.5% 미만의 미소마진 판정을 내리
고도 "앞으로 다시 덤핑할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당국은 더이상
반덤핑 관세부과가 정당하지 않다고 결정할 경우 즉각 조치를 종료해야 한다"
는 WTO 반덤핑협정에 명백히 어긋나는 매우 자의적인 규정이기 때문에 마땅히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승소판정은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WTO 분쟁절차를 이용한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루지에로 WTO 사무총장
이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보호무역경향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교역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은 한국산 스테인리스 스틸 강선 열후판코일 및 합성고무제품,
그리고 일본산 스테인리스 강판 등에 대해 반덤핑제소를 했으며 유럽연합(EU)
은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팩시밀리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부과
를 결정한데 이어 한국산 철강로프 및 케이블에 대해서도 반덤핑 제소를 검토
중이다.

특히 미국은 툭하면 슈퍼 301조를 내세우며 무리한 통상압력을 가해와
우리 뿐만아니라 다른 나라들로 부터도 원망을 받아 왔다. 최근 EU는 WTO에서
미국의 슈퍼 301조에 대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
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WTO를 적극 활용해 선진국의 보호무역조치
남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바로 이때문에도 이번 승소판정의
의의가 작지 않다고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