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재 < cjseong@hanbat.chungnam.ac.kr >

훈민정음 제자해에서 목화토금수 오행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것은
초성과 종성에 사용되는 닿소리 목록에서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14세기에 정립된 훈민정음에서의 닿소리와
홀소리 분류체계도 발달된 현대언어학의 이론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훈민정음에서 닿소리의 제시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목구멍 소리(후)어금니 소리(아) 혀소리(설) 잇소리(치) 입술소리(순).

조음자리의 관점에서, 가장 깊은 목구멍에서 점차로 전진하여 입술에까지
나아간 것을 알 수 있다.

오행의 순서로는 수 목 화 금 토의 배열로 되어있다.

이를 음계로 얘기하면 우각치상궁이다.

기본글자로서 목구멍 소리는 아, 어금니 소리는 가, 혀소리는 나, 잇소리는
삥, 그리고 입술소리는 링이다.

사대주의에 젖은 선비들의 강력한 반대 덕택에, 거의 3백년 간이나
묻혀있다가 영조대의 학자 신경준에 의해 비로소 훈민정음의 재조명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는 위의 닿소리 오행배속을 약간 조정하여 목구멍 소리를 토로, 입술소리
를 수로 바꾸어 놓았다.

현대 성명학자의 대부분은 이 신경준의 설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후천수 개념에서 수는 1과 6을, 토는 5와 10을 관장한다.

우주만물의 탄생순서상 물이 첫번째임을 갈파한 것인데 조음기관중 공기의
흐름이 폐에서 흘러나와 첫번째로 부딪히며 또한 가장 젖어 있는 곳이 목구멍
임을 인정한다면 오행 수를 배속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임을 알 것이다.

따라서 신경준의 개찬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훈민정음의 창제 당시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은 정보의 공유에
상당히 인색하다.

창제 당시 최만리나 정창손 등의 무리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것도 선비 계급
만 향유하던 문자정보를 일반 백성들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한글을 업신여기고 한문을 숭상하는 일은 이러한 정보독점욕과 기득권
유지의 한 수단에 다름아니다.

나라를 끌고가는 분들이라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