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종신고용" 신화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때가되면 승진을 시켜주고 오래 다니면 보너스까지 챙겨주던 "연공서열"도
흘러간 옛 노래다.

회사가 근로자를 "가족"처럼 평생 챙겨주던 시절은 끝났다.

일본에서 회사도산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비자발적 실업자가 10월현재
94만명에 이르고 있다.

전체 실업자 2백90만 가운데 32.4%가 타의로 직장에서 쫓겨난 것이다.

규모면에서 사상최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증가속도다.

지난 1년동안에만 무려 40만명 이상이 실직을 당했다.

하루 1천명 이상이 강제로 쫓겨난 셈이다.

실업의 원인도 완전히 달라졌다.

올해 초까지만해도 자발적인 퇴직이나 조기퇴직제에 따른 "희망퇴직"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들어서는 반강제적인 "해고"가 일반화되고 있다.

일본식 경영의 상징인 종신고용.

한때 전세계가 부러워했던 평생직장 생활.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기업들이 임금삭감이나 사원들을 자회사로 내보내는 것 만으로는 버틸수
없게 됐다.

구조조정을 통한 대규모 인원정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종신고용은 이제 지난날의 꿈 같은 말이 돼 버렸다.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노동성이 4천8백여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관리조사에서는 전체의
50.5%가 "종신고용제를 고집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종신고용제가 무너지면서 연공서열제에 메스를 대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를 폐지하고 성과급을 도입했다.

"앞으로 인사원칙을 유럽이나 미국형으로 바꾸겠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미쓰이그룹의 주력인 미쓰이물산까지 일본식경영
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마쓰시타전기도 연봉제를 도입했다.

또 관리직을 대상으로 주가가 오르면 보너스를 주는 "주가연동보수제"를
실시키로 했다.

"종업원 중시"에서 "주주중시"로 바꾸기 위해 자사주 1천억엔 어치를 매입,
소각시키기로 했다.

임원들에게는 성과급의 일종인 스톡옵션제도(주식매입선택권)를 도입했다.

소니는 신입사원 때부터 성과급을 적용시키기로 하는 등 미국식 경영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도시바는 회사 전체의 실적은 물론 사원이 소속된 부문의 실적과 개인능력
등을 반영, 보너스를 결정할 방침이다.

히타치제작소도 실적반영 보너스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18.5%로 1년전에 비해 6%포인트 늘어났다.

올해 연봉제를 새로 도입하겠다는 기업은 9.9%에 이르렀다.

연말에 가서는 일본기업 4곳 가운데 한 곳이상(28.4%)이 연봉제를 실시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평생직장개념이 허물어지면서 퇴직금제도도 급변하고 있다.

마쓰시타전기는 올들어 퇴직금을 한꺼번에 지급하지 않고 급여에 포함시켜
매달 지급하고 있다.

이를위해 "전액급여지불형 사원제도"를 도입했다.

정년때까지 근무하지 않고 경력을 쌓으려는 사원들을 위한 것이다.

기술직을 중심으로 신입사원의 44%가 이를 선택했다.

대형 종합수산업체인 마루하 등은 근무기간에다 직능자격이나 업무실적
등을 감안한 점수를 계산해 퇴직금을 지급하고 있다.

연공보다는 회사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자진퇴직자들의 퇴직금도 높아지는 추세다.

종전에는 자진 퇴직자의 퇴직금이 정년퇴직자의 66%(근속 10년)에 불과
했으나 지금은 90%(30년) 수준이다.

이렇게 인력을 무더기로 잘라내고 급여를 차별화하고 있지만 노동력 과잉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노동성은 "11월 노동경제동향 조사결과 근로자과부족지수가 사상최저를
기록, 전업종에서 고용과잉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
했다.

민간기관들의 고용전망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종합연구소의 야마다 주임연구원은 "국내총생산이 연평균 1.8% 증가
하더라도 2005년에 가서는 실업자가 6백39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실업률이
9.2%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