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재 < 충남대 언어학과 교수. 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훈민정음 해례의 제자해는 글자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담고 있다.

훈민정음 전체를 아울러 주역의 근본철학이 응용되어 있는 유일한 장이 이
제자해다.

첫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하늘과 땅의 근본적인 이치는 오직 음양과 오행에 있다.

곤과 복의 사이에서 태극이 생겨나며 그 혼돈의 세계에서 움직임과 쉼의
반복으로 음과 양이 생겨난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만유는 결국 이 음양에서 비롯된 것이니 사람의 말소리
도 마찬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금번 정음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그 음양의 이치를 따랐다.

글을 시작하는 첫부분에서 음양오행 사상의 근본을 설파하고 있다.

주역의 64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낯설겠지만 위 도입부의 두 번째
문장은 음과 양이 만들어지는 이치를 그 어느 전적보다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복희씨가 용마의 배에서 나온 하도의 모습을 보고 선천팔괘를 구상한 뒤
이를 일정팔회의 법칙에 의하여 8곱하기 8은 64하여 64괘를 완성하였다.

이를 원의 모양으로 둥글게 늘어 놓은 것을 복희 64괘 방위도라 한다.

이 방위도에서 중지곤괘와 지뢰복괘는 나란히 붙어 있으며 정북을 가리킨다.

곤괘는 괘를 구성하는 여섯 개의 효가 전부 음으로 되어 있다.

복괘는 맨 아래의 효만 양이고 나머지는 음으로 되어 있다.

사건의 출발은 여기서부터다.

북녘, 삭풍이 몰아치는 어둠의 땅 저 먼 자락에서 한 줄기 서광이 피어나듯
양의 밝은 기운이 새롭게 피어오른다.

이를 곤과 복의 사이에서 우주가 생성된다고 표현한 것이다.

1년중 곤과 복이 교차되는 시기는 동지이다.

추위와 어둠의 극점에서 새로운 한해의 어린 기운이 바야흐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를 일양이 시생이라고 했다.

훈민정음의 제자해 도입부는 이렇게 우주의 탄생과 함께 시작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