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은 한국의 유통시장을 어떻게 볼까.

이들은 한국 정부가 아직도 유통시장에 대해 불필요한 규제의 손길을
뻗치고 있으며 유통시장 내부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감춰져 있다고 털어
놓았다.

한국경제신문은 "한국의 경제위기와 개혁프로그램"을 주제로한 외국인
좌담회 시리즈 열번째로 존 베이코닥코리아 사장, 프란츠 요셉 비어브라우어
오스람 코리아사장, 다카하시 마사유키 엡손코리아 사장 등을 초청, "한국
의 유통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진단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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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 참석자 : 존 베이 < 코닥코리아 사장 >
F.J.비어브라우어 < 오스람 사장 >
다카하시 마사유키 < 엡손코리아 사장 >
전성철 < 국제변호사 / 사회 > ]

<> 전성철 국제변호사(사회) =한국이 IMF 관리체제로 접어든지 거의 1년이
지났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으로서 경영에 대한 충격은 없었나.

<> 존 베이 코닥코리아 사장 =IMF 관리가 그렇게 갑작스럽지만은 않았다.

차입경영에 의존해 있는 한국 대기업들의 경영상황을 보고 한국경제에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래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영업전략을 새로 짜는 등 경영환경이 급변
하는데 대비한 준비를 했다.

<> 프란츠 요셉 비어브라우어 오스람 사장 =마찬가지다.

IMF 관리체제이후 회사매출은 오히려 세배 가까이 늘었다.

원화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원자재를 독일에서 들여와 한국에서
조립해 다시 해외로 수출하는 생산및 판매시스템 덕을 본 것이다.

<> 사회 =그동안 한국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펼친 노력을 평가
한다면.

<> 베이 사장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방향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경제위기탈출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제시했다.

대규모 실업 등 고통을 감수하라며 한국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기업들은 기대한 만큼 구조조정을 실천하지 않았다.

처방전은 마련됐는데 환자가 약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와중에 중소기업들만 희생되고 있다.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이라는 주식회사를 이끄는 기관차다.

이들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위기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 비어브라우어 사장 =한국정부의 관료들이나 기업인들의 태도도 변하지
않았다.

관료들은 옛날의 좋은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같다.

대기업 경영진도 별로 다를 게 없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최근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한국에 들어와 고용을 창출하고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게 한국경제에도
플러스요인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한국이 시장은 개방했으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충분한
토양을 다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 다카하시 마사유키 엡손코리아 사장 =한국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다.

사실 일본도 그 점에 있어서는 오십보 백보 수준이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했던 경험과 비교해 볼 때 아직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

역시 개방은 한국의 기업인들이나 관료들이 앞장을 서야 한다.

완전한 개방을 위해서는 이들이 변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감한 변화없이 과거에 집착해서는 세계 경제전쟁에서 생존할 수 없다.

아직도 한가지 사업을 시작하려면 복잡한 서류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점이 한국의 개방정도를 말해 준다.

<> 사회 =한국정부의 규제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는지.

<> 베이 사장 =한국에 진출한 다른 한 외국기업이 겪은 사례를 직접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외국기업은 지난해말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필름 판매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 회사의 매출이나 비용은 90%이상이 달러기준으로 잡힌다고 한다.

그런데 원화가치가 폭락, 제품의 판매가격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따라서 가격을 상향조정해야 했다.

그 기업 주주들의 이익을 보장해 줘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였다.

더욱이 한국에 진출한 다른 외국경쟁업체와는 달리 그 기업은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모두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불리함을 안고 있다.

이들 업체와의 가격경쟁을 위해서도 가격조정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한국의 모정부기관이 가격인상후 서너차례 전화를 해 판매가격
을 다시 인하토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판매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은 시장환경에 따라 기업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 외국회사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쪽에서 근무해 보았지만 한번도 그러한
간섭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의 언론매체들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에서 값비싼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는 고객을 호화사치행위쪽으로만
몰아간다.

너무 일방적이고 좁은 시각이다.

지나친 근검절약과 저축은 내수를 더욱 위축시킬수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후퇴국면에 들어서면 수출이 줄어들게 되므로
내수라도 살려야 한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기업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모국으로 가져 나가지 않고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역할도 한다.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외국기업은 한국기업이다.

<> 비어브라우어 사장 =독일 본사에서 들여온 제품이나 생산설비를 한국
시장에 판매하거나 설치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갖가지 승인딱지가 필요
하다.

때론 공무원들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등 간섭이 맣다.

간섭이 지나칠 정도여서 제품생산이나 판매가 몇달씩 지연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만 피해를 입는 셈이다.

지나친 간섭은 시장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한국 관료사회에도 효율성과 생산성의 개념이 도입돼야 할 것이다.

개선할 점이 많다.

<> 사회 =한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 문제는 없는가.

개선돼야 할 유통시장의 문제점은.

<> 베이 사장 =한국의 유통시장은 정말 끔찍할 정도다.

무엇보다 무자료거래가 너무 성행한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정확한 영수증을 주고받지 않는다.

부가가치세 등 거둬들여야 할 세금이 새어나가는데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성향이나 서비스향상을 꾀하기 위해서라도 소매상들과 직접
거래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에 제품을 대는게 손쉽고 골치도
아프지 않다.

대형할인점들은 소형판매점보다 판매마진이 낮지만 대량판매를 통해 이익을
낸다.

무자료거래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내 소매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 비어브라우어 사장 =우선 판매만 하고 보자는 상혼이 만연돼 있는 것도
문제다.

최종 고객에 대한 서비스개념은 찾아 보기 드물다.

용산이나 청계천 등 소매점을 찾으면 그런 문제가 잘 드러난다.

최종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통도 일종의 생산행위다.

생산자나 제조업자와 연결되는 단순한 통로역할만을 하는게 아니다.

<> 사회 =한국 근로자들과의 마찰은 없는가.

<> 비어브라우어 사장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족스럽다.

회사의 경영방침을 투명하게 설명해 주면서 이해를 구한다.

한번도 노사분규를 겪은 적이 없다.

서로를 존중해 주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 베이 사장 =다행히 코닥도 노사간 불협화음이 거의 없다.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이런 관계를 계속 지속할수 있도록 노력한다.

일년에 40시간정도를 할애해 자기계발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교육수준이 높은데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열중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헌신적인 자세로 일한다.

코닥이 한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 사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 마사유키 사장 =업무나 사업관계에서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중요시되는게
사실이다.

다만 상호신뢰나 공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부작용이 많다.

<> 베이 사장 =동감이다.

사적인 관계와 업무적인 관계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비지니스에서도 사적인 관계가 적용될 때가 많다.

<> 비어브라우어 사장 =제품을 판매하거나 살 때도 20%는 사적인 관계가
이용된다.

나머지 80%가 제품을 보거나 서비스를 고려한다.

< 정리= 조정애 기자 jcho@ 김홍열 기자 com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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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