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는 경쟁은 통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나아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져야 시장경제는 세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경쟁의 불공정성이 심한 것으로 생각돼 공정
경쟁의 필요성이 강조돼 왔고, 많은 정책과 법령들이 공정한경쟁.거래질서의
확립을 표방하고 있다.

독점금지법이 미국에서는 반트러스트법, 독일에서는 경쟁제한금지법으로
불리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거래"법이라고 하지 않은가.

또 대기업과 납품업체, 제조업자와 도.소매업자 등 경제적 강자와 약자간의
거래를 공정화하기 위해 하도급법 등 여러 법제가 운용되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정부의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경제적 선택과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경쟁은 자유롭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공정경쟁의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혼돈이 있으며, 종종 사람들은
이 말을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또 공정경쟁과 자유경쟁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유경쟁을 위해서는 정부개입을 줄여야 하나 그렇게 하면 강자의 횡포로
공정경쟁이 저해되며, 우리와 같은 재벌경제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과 상충이 우리가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수업이 겪어온 문제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고유업종, 단체수의계약 등의 중소기업 보호.육성시책, 재벌정책
등은 자유경쟁을 제한한다고 비판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정경쟁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옹호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정경쟁 개념의 한계와 모순에 기인
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공정경쟁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강조되어 왔지만, 그 내념을 정립
하고 올바로 정책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공정경쟁의 원칙은 너무 자명해서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과연 그런가.

흔히 힘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경쟁의 공정성이 파악되곤 한다.

권투경기에서 체급별로 시합하듯이 경제에서도 힘이 비슷한 상대간의 경쟁
이라야 공정경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과 비재벌간에는 공정경쟁이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재벌을 규제해야 하며 그리하여 공정경쟁의 여건이 갖춰지면
자유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경쟁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이는 처음부터 경제적 강자와 약자간의 경쟁을 불공정하다고 단정하는
것이며 힘의 차이가 항시 존재하기 마련인 현실에서 경쟁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월한 효율도 힘으로 간주되어 규제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공정경쟁은
경쟁자체를 억압하기 위한 명분으로 약용되기 십상이다.

또 경제의 세계화에 따라 국내기업들은 기술 자금 판매력 등에서 훨씬
우세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힘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매우 불공정한 경쟁일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수입과 외국인투자를 제한하고 재벌을 보호해 공정경쟁의
여건을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경쟁의 불공정성은 힘의 남용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되기도 한다.

기업이 자금력 시장지배력 등을 남용해 시장을 지배하려는 것을 응당
불공정한 행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경쟁자는 우월한 효율에 의해서도 배제되게 된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가격을 낮추면 경쟁자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 기업이 효율성이 높아 저가판매를 한다면 독점이 되더라도 정당한
행위일 것이며 단지 자금력을 이용해 경쟁자를 몰아내려는 것이라면 불공정
한 행위일 것이다.

따라서 힘의 남용과 우월한 효율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이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의 남용이라는 공정경쟁 개념은 남용되어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추구되고 있는 공정경쟁이란 어느 나라의 기업이든 시장접근
활동의 기회에 있어 각국의 정책.제도.관행 등에 의해 부당한 제약이나
불리한 취급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제의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정책.제도의 국제적 차이로 인한 무역과
투자의 왜곡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환경 기술 경쟁규범 등을
다를 뉴라운드를 출범시키려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어온 공정경쟁의 개념은 국제적 개념과
괴리되어 있으며 그 자체로도 많은 결합을 갖고 있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첫째 공정경쟁은 정부의 차별적 지원.개입에 의한 경쟁조건의 왜곡이 없는
상태로 해석되어야 한다.

둘째 기업행위의 공정성은 가격 품질 생산량 등에 미치는 영향에 의거
해서만 판단되어야 하다.

그래야만 공정경쟁과 자유경쟁의 상층을 피할 수 있고 공정경쟁 개념에
입각한 정책이 비효율적 사업자의 보호와 자의적 기업통제라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신광식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ksshin@kdiux.kdi.re.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