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K교수의 아들은 유학간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살다 귀국한 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들어간 대학도 조금 다니다 그만 뒀다.

그는 그러나 다음해 다른 학과를 선택한 뒤 열심히 공부, 7학기만에
졸업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적성이 뒤늦게 발현된 경우다.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국내 제도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한
K교수의 사례는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교회와 성당 사찰은 새벽기도와 백일기도를
올리는 부모들로 가득하다.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표정은 간절하다 못해 처연하다.

시중엔 엿 사과 양말 팬티등 온갖 종류의 합격기원 상품이 등장했다.

수험생용 팬시용품도 갖가지.

휴지(잘풀고) 포크(잘찍고) 거울(잘보고) 나침반(잘찾아라)에 야구방망이
(잘쳐라) 볼링세트(잘굴려라)까지 나타났다.

합격마케팅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같은 선식이라도 수험생 건강을 위한 "합격선식"이라고 이름붙이는
식이다.

이번 수능시험 지원자가 86만5천명인 만큼 가족과 친구 선후배가 엿이나
팬시용품 한두가지씩만 선물해도 1백억원이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입시철 특수가 아닐 수 없다.

백일기도나 새벽기도를 올리는 모정은 아름답다.

엿이나 합격사과는 물론 부적의 요소가 짙은 포크나 팬티를 주고 받는
일 또한 그것이 수험생에게 심리적인 안정요소나 격려로 작용한다면 그다지
나무랄 수 없다.

거울과 나침반 도끼등은 객관식 평가의 부산물인 만큼 주관식 평가제가
도입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기도나 부적, 총명탕보다 중요한 건 부모와 수험생 모두 일류대 진학만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획일주의를 탈피하는 일이다.

대학입시 시패를 인생의 실패로 규정짓고 좌절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함도 물론이다.

자퇴와 휴학을 거듭하는 아들을 못났다고 몰아붙이지 않고 어떻게든 길을
찾아주려 애쓴 K교수의 태도는 이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귀감이 될만하다.

역량이나 적성을 파악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기대했다 실망하는
것이야말로 자녀를 자포자기 상태로 내모는 가장 큰 요인일수 있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