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경영하는 환경이 계속 변화하는데 원칙이 서있지 않으면
그 기업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데도 전략이 있어야 한다.
단지 몸집을 부풀리기 위한 투자라면 잘못된 것이다.
독일 화학그룹 바스트(BASF)의 최고경영자인 위르겐 쉬트르베(Jurgen
Strube) 회장은 경영원칙을 충실히 지켜가며 위기를 극복한 인물로 꼽힌다.
사업을 확정하기 위한 그의 전략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수직계열화를 위한 투자였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화를 위한
해외거점 마련이었다.
1865년 3명의 독일 화학자들이 설립한 바스프가 세계 4위의 종합화학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경영자들이 오랫동안 경영철학을 지켰기
때문으로 볼수 있다.
바스프그룹은 현재 39개국에 생산단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1백70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또 약 1백개의 독립기업이 바스프그룹에 속해 있으며 97년 기준으로
5백58억마르크(약 44조 7천억원)의 매출액과 53억마르크(약 4조2천억원)의
세전이익을 기록했다.
이같이 거대한 기업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위르겐
쉬트르베회장이다.
69년 바스프의 자금부에 입사한 그는 자재조달부서를 거쳐 74년 브라질
상파울로 지사로 파견됐다.
이후 쉬트르베 회장은 북미 지역책임자로 있으면서 바스프그룹 이사회의
멤버가 됐다.
88년에 루드비히샤펜의 본사로 돌아온 후 90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법학 박사학위를 소유하고 있으며 바스프그룹에서의 30여년간 생활
중 대부분을 해외 생산기지에서 근무한 그는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브라질과 미국에서 쌓은 국제적인 경험은 쉬트르베 회장이 2차
대전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기를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물가상승률이 3백50%가 넘는 브라질에서 지역 책임자로 있으면서
경제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쉬트르베 회장은 "해외 생활을 통해 바스프에 대한 전반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쉬트르베 회장이 취임한 때는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바스프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낮은 경영성과를 기록했으며 최고 경영층은 경직된 위계질서에 흠뻑 빠져
있었다.
화학을 전공한 경영인들이 연구개발(R&D)을 중시한 것은 좋았으나
거시적인 경영 마인드가 부족해 방만하게 회사를 경영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경영실적이 더욱 악화된 것이었다.
쉬트르베 회장은 난관을 헤쳐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과 경영원칙을 세웠다.
먼저 의사소통채널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명령에 의해 경영하기 보다 기업의 목표와 비전을 임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시켜서 변화를 꾀하도록 유도했다.
그 자신도 바스프의 팀원으로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이같은 노력은 독일의 독특한 이사회 형태인 경영협의회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기업혁신을 위해서는 주주와 종업원 동수로 구성되는 경영협의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쉬트르베 회장은 또 주요 사업에 대한 강력한 비용절감 노력을 기울였다.
93년 바스프 그룹의 매출액은 89년에 비해 12%가 감소한 4백억 마르크로
4년 연속 줄었다.
같은 기간 세전 수익도 76%가 줄었다.
쉬트르베 회장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비용절감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해마다 평균 종업원의 20%를 줄여 약 3만명의 인력을 축소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92년 총 비용구조에서 26.6%를 차지하던 인건비
비중이 97년에는 21.1%로 줄었다.
아울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고경영진의 수도 크게 줄였다.
한편 기업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룹 창업원칙인 수직계열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그룹 내에 있는 수많은 기업들간의 제품흐름과 에너지 공급, 물류간
최적의 통합을 위한 경영전략이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바스프는 본사가 있는 루드비히샤펜 생산단지
한곳에서만 매년 약 10억마르크의 비용절감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같은 수직계열화를 위해 네덜란드 앤트워프에 있는 생산기지에
90년들어서만 25억달러를 투자했다.
마직막으로 쉬트르베 회장은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80년대까지 전체 매출중 해외 매출액 비중이 약 10%정도였으나 최근에는
그 비중이 약 30%까지 높아졌다.
70년대부터 해외 진출에 눈을 떴던 바스프는 71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에 염료 및 플라스틱 공장을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세계 곳곳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왔다.
특히 쉬트르베 회장이 취임한 이후 이같은 글로벌 투자전략이 급속히
진전됐다.
미국 현지 거점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94년 약 7억 마르크를
투자했으며 아시아 여러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투자했다.
경쟁사인 다우 훽스트 엑슨 ICI 등을 따돌리고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중국을 핵심 주력시장으로 삼기도 했다.
97년에 발표한 바스프 그룹의 대 아시아 투자계획은 공격적인 글로벌화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스프 그룹은 앞으로 5년간 아시아지역에 약 80억 마르크를 투자할
계획이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스프 그룹의 대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바스프 그룹은 화학에 비해 산업주기를 덜 타는 석유 및 가스, 의약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94년에 유럽 최대 천연가스업체인 러시아의 그즈프롬사와 가스공급계약을
맺었다.
의약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94년 독일 의약업체인 사기타사를 인수했으며
영국 의약업체인 부트사도 인수했다.
쉬트르베 회장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바스프의 순익은 90년 11억
마르크에서 97년 32억 마르크로 증가하는 등 경영실적이 호전됐다.
< 고동휘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