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곁에 월셋방을 얻어 아예 눌러 앉은 70 노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한수를 떠놓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식사때면 항상 두 사람 밥상을 차려 놓았다.

엄동설한에도 아들을 생각해 불기없는 냉방에서 지냈다.

온 동네의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아들 대신 참회했다.

70년대 후반 살인죄로 복역중이던 사형수 양동수 어머니의 이야기가 "모정
불심"이란 타이틀로 방송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이 어머니에게로 쏠렸다.

5천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가 제출됐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사형"
에서 "무기"로 감형해 주었다.

그는 어머니가 87세로 세상을 떠난 뒤 지난 96년 21년만에 모범수로 석방
됐다.

지금은 부산 자비사의 법사가 되어 불우 노인들을 돕는데 앞장서 일하고
있다.

모정이 아들의 목숨을 살린 예다.

자식 울음소리에 저승길을 가다가도 돌아오는게 "에미"라는 말이 있듯
모정의 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아름답다.

68년 재일한국인 차별대우에 항의해 야쿠자 2명을 죽이고 인질극을 벌인
죄로 일본의 최장기 무기수가 돼 30년째 복역중인 김희로씨의 어머니 박득숙
씨가 92세로 3일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옥바라지만 해오다가 4년전 반신불수가 되어 양로원 병석에 누워서도
"아들의 벌을 내가 대신 받게 해달라"고 호소해 오던 박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다고 한다.

외국인 무기수는 7년을 복역하면 가석방시켜 국외로 추방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법이라지만 그에게 일본은 야멸차게 그런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10만명의 탄원서도 외면했다.

임종이라도 하게 했다면 모자의 한이 덜했을 것 같다.

김씨는 1급 모범수이고 암에 걸려 있는 70의 노환자다.

김대중 대통령 방일때 박삼중 스님이 신원보증서까지 일본 법무성에 제출해
놓고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정부는 차관이나 무역 등 거창한 것만을 외교로 생각하는 것일까.

해외동포가 힘없는 조국을 원망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