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노벨경제학 수상자 센 교수의 파레토적 자유주의 ]

안종범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cban@yurim.skku.ca.kr >

가지각색의 개인이 저마다 갖고 있는 생각들을 어떻게 사회 전체적인
의견으로 묶을 수 있는가는 원시사회 이래 중요한 관심사였다.

마치 박찬호 선수를 군대에 보낼 것인가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어떻게
수렴해 최종결론을 내릴 것인가와 같은 문제다.

이처럼 다양한 개인의 의견을 묶어 사회전체의 의견으로 만드는 과정을
집단적 선택(collective choice)이라고 한다.

이러한 집단적 선택에 대한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학자가 바로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티니 칼리지
교수다.

경제학에선 일찍이 집단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도구로서
개인들의 선호(preference)를 사회전체의 선호로 연결시키는 이른바 사회
후생함수(social welfare function)를 도입했다.

박찬호 선수를 무조건 군대에 보내야 하는 대안, 아니면 앞으로 3년연속
10승 이상을 거두어야 면제해 준다는 대안 등등 여러 대안들이 있다면, 이
대안들에 대한 국민들 각각의 선호도(preference)를 사회적 선택으로 연결해
주는 도구가 바로 사회후생함수이다.

예컨대 다수결 혹은 만장일치가 바로 사회후생함수에서 개인선호를 사회
선호로 연결시켜 주는 한 방법인 것이다.

다수의 개인이 존재하는 경제에서 사회후생에 대해 논하기 위해선 가치판단
이 전제돼야만 한다.

어떤 상황이 다른 상황보다 더 낫다고 말할 때에는 언제나 가치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가치판단을 파레토 원리(Pareto Principle)를 통해
하게 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어떤 변화가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들의 상태를 더 나아지게 해준다면 그러한 변화는 바람직한 것이
된다.

예를들면 댐건설에 대해 수몰민을 제외한 모든 지역주민이 찬성하는 경우
수몰민에게 나머지 지역주민이 충분히 보상해 준다고 할 때, 수몰민이 댐
건설로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댐 건설은 파레토 개선
(Pareto Improvement)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파레토 원리는 자유주의 원리와 양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센이 사용한 예를 갖고 이를 설명해 보자.

건전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A와 외설적인 성향이 있다고 평가되는 B란
두사람이 있고, 이들 앞에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라는 책이 있다.

이제 세가지 대안이 생긴다.

<>A가 그 책을 읽고 B는 읽지 않는 대안 X <>B가 읽고 A는 읽지 않는 대안
Y <>둘다 읽지 않는 대안 Z 등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세가지 대안에 대한 두 사람의 선호체계는 다음과 같다고 가정하자.

A는 Z-X-Y의 순서로, B는 X-Y-Z의 순서로 선호도를 표시한다.

즉 건전한 A는 아무도 읽지 않는 Z가 가장 좋고 그 다음으로는 외설적인
B가 그 책을 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읽는 Y를 선호한다.

한편 B는 평소 건전하다고 평가받는 A가 읽는 것이 가장 좋고 아무도 읽지
않는 상황을 가장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파레토 원리에 따르면 A와 B 모두 Y보다는 X를 선호하기 때문에 X가
선택되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에 의하면 Y가 선택된다는 것이다.

A와 B가 각기 그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 선택할 경우 당연히 A는 읽지
않고 B는 읽는 대안 Y가 선택될 것이다.

센은 이와같이 자유주의와 파레토 원리가 공존하는 파레토적 자유주의
(Paretian Liberal)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밝혔다.

반면 그는 공존가능한 경우도 제시했다.

공존이 불가능한 이유는 A와 B가 상대방에 간섭하고자 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를 파레토원리보다 다소 우위에 둘 경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즉 A와 B가 처음에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 파레토적 개선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는 다음부터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만을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센은 파레토적 자유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사회후생함수의 논의에서
자유주의적 가치가 포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개인의 효용에도 그 가치가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이 소비하게 되는 재화에 대해서만 선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득분배나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선호도를 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파레토원리에만 입각한 사회후생함수는 실제 생활에서의 선택의
중요한 측면을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소비하게 되는 재화에 대해서만 선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득분배나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선호도를 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센은 이처럼 사회후생함수의 합리적인 사용이 가능하도록 이론적인 뒷받침
을 제공했다.

센은 또 이를 기초로 분배문제나 빈곤문제에 대해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