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구개발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대덕연구단지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니 매우 걱정스럽다. 보도(본지 26일자 1면)에 따르면 국내 굴지의 기업
연구소와 국책연구기관 등 모두 62개 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대덕단지에서는
요즈음 연구비삭감으로 연구프로젝트들이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는가 하면
모기업부도와 이직 등으로 고급두뇌들의 이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올들어 지난 9월말까지 대덕연구단지를 떠난 석박사급연구인력은 정부출연
연구소만 4백50여명에 달하고 민간연구소들까지 합치면 1천여명이 훨씬 넘는
다고 한다. 문을 닫거나 조직을 축소한 기업연구소들만 올들어 52개에 달한
다니까 무리가 아니다. 실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연구원들의 이직사태가 아니다. 그같은 결과를 가져
오게된 배경이다. 극심한 불황을 맞아 당장 수익증대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이유로 연구개발분야를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선정한 기업들의 단견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열악한 여건개선은 뒷전인채 연구예산을 나눠먹기식으로
배정해놓고 연구결과가 신통치않다는 이유로 국책연구기관의 조직축소와
통폐합을 요구하는 정부의 정책자세가 과연 옳은 것인지 묻지않을 수 없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본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외자를 많이 들여와 외환보유고를 쌓는 것은 당장의 경제안정에 필수적이다.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
또한 현안중의 현안이다. 그렇다면 국제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인가. 남보다
앞선 기술이다. 세계각국의 수요침체로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앞선
기술로 값싼 제품을 만들어 내지않으면 수출을 늘릴 길이 없다. 더구나 과학
기술을 산업화 상업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과학
기술투자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역설이 정설로 돼있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기술투자에 정책의 역점을 두어왔고 외형상 경제규모에
대비한 연구개발투자는 선진국에 별반 뒤지지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러나
기술인프라 등을 고려한 기술개발력에서는 후진국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말해 원천.기초기술 수준이 취약한데다 정부와 기업간, 기업과
기업간, 기업과 학교간 등 연계연구체계가 미흡해 낭비가 많았다.

우리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인원을 줄이기보다 지금
까지 비효율적으로 운영돼온 그같은 연구개발체제를 과감히 시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지금의 경제 현실에서 연구개발의욕마저 없어진다면 재도약의
희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급두뇌들이 안심하고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기업의 책무이자 국가의 의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연구개발투자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식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