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002년 대입무시험전형제 확대에 앞서 내놓은 학교교육 정상화
방안은 지금까지 학생평가의 절대기준이었던 시험을 줄이겠다는 면에서 가히
획기적이다. 특히 입시위주 암기식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학습준비
도 참여도 성취도 등을 관찰 기록하는 수행평가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종래의 공교육방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사고의 대전환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수행평가의 경우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교사가 과목과 단원별 평가의 목표 내용 수준 방법을 미리
공개하는 사전예고제가 도입된다지만 어차피 평가에는 주관이 작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투명하게 하려면 교사의 헌신과 주체적 참여가 필수적이나
학생수에 비해 교사의 절대수가 적고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현재 여건
에서 실현가능성은 의문스럽다. 9월15일부터 "학교발전기금의 조성.운영 및
회계관리에 관한 규칙"이 시행돼 학교운영위가 설치된 초.중.고교에서 모금
행위가 가능해진 것도 주관적 평가에 대한 염려를 가중시킨다.

예체능 평가의 경우 이의신청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도 청와대에 E메일
민원 보낸 고교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리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현실성이
희박하다. 학교운영위에 각종 심의기능을 맡긴다는 것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고등학생의 교육서비스만족도 조사 결과 학교운영위 운영 내실화
점수가 36.9점으로 낮다는 사실은 운영위의 권한 강화에 대한 우려를 높인다.

학생과 학부모가 담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발상은 현실을 무시한
처다다. 특정교사를 원하는 학생이 많은 반면 기피교사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사 사이의 갈등을 유발시켜 교직사회의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교사의 보수차등제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 설득력이 적다.

초중고교육이 개혁돼야 한다는 것은 당위다. 그러나 교사의 자질 향상과
사기앙양을 위한 대책 없이 업무부담만 늘리는 주관식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내신경쟁 과열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치맛바람을 가속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일류대 체제가 계속되는 한 단순히 평가방식을
바꾸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실업계 고교의 취업률이 50%도 안되고
지방대 출신은 입사원서도 내보지 못하는 상황 아래선 무시험전형제도도 결코
개선책이 될 수 없다.

국내교육은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다
교육정상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일류병 해소의 전제조건인 대학특성화가 필수
적이다. 따라서 지방대학의 적극적인 육성및 이들 졸업생의 취업기회 확대,
고교졸업생에 대한 진로 지도문제가 반드시 선행내지 병행돼야 한다.

무엇이든 정부에서 선도하고 정권내에 가시적 성과를 이루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내년초까지 겨우 4개월밖에 안남겨두고 교육제도를 뿌리채
바꾸겠다는 시도는 너무 성급해 보인다. 이번 정책 역시 4년 뒤면 뒤바뀔
것이라는 냉소적 시선을 불식시키는 것도 과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