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창간 34돌] 기업 : 수출 일등공신..최병철사장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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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잘타지 않는 전선"
극동전선 최병철 사장은 이 전선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갖고 있다.
이 제품이 극동전선을 세계적인 선박용 전선업체로 성장 시켰을 뿐 아니라
첨단 전선업체로 자리매김시키는 발판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80년대말부터 일부 선박 및 외국의 플랜트 등에 사용돼온 무독성 난연
전선은 90년대초 극동전선을 통해 국산화됐다.
이 회사의 전선 개발 배경은 특이하다.
극동전선은 이탈리아의 피렐리가 휴무를 이유로 국내 대기업에 이 전선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우연찮게 공급 기회를 얻게됐다.
리비아의 해양구조물 제작에 참여한 대우가 극동전선에 이 전선을 납품할수
있는지를 타진해온 것.
"생전 처음 접한 기술이라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최 사장은 그러나 밀어붙였다.
선박용 전선업체로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초 머뭇거리던 이형종 회장도 고무배합표를 얻기 위해 직접 일본까지
건너가는 열의를 보였다.
대우와는 납기를 어길 경우 하루 1만달러의 페널티를 내기로 하고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관련 규격이 10여개나 됐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조차 힘들었다.
독일 대사관 등 외국 대사관을 찾아갔다.
최 사장은 "종전의 전선과는 개념이 달랐다"며 "간부사원들은 회사에서
밤새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술회했다.
극동전선은 결국 해냈고 납기 준수, 품질에 만족한 대우가 추가물량까지
주문했다.
극동전선은 이 거래에서 무독성 난연을 5백만달러어치 공급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
극동전선 최병철 사장은 이 전선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갖고 있다.
이 제품이 극동전선을 세계적인 선박용 전선업체로 성장 시켰을 뿐 아니라
첨단 전선업체로 자리매김시키는 발판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80년대말부터 일부 선박 및 외국의 플랜트 등에 사용돼온 무독성 난연
전선은 90년대초 극동전선을 통해 국산화됐다.
이 회사의 전선 개발 배경은 특이하다.
극동전선은 이탈리아의 피렐리가 휴무를 이유로 국내 대기업에 이 전선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우연찮게 공급 기회를 얻게됐다.
리비아의 해양구조물 제작에 참여한 대우가 극동전선에 이 전선을 납품할수
있는지를 타진해온 것.
"생전 처음 접한 기술이라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최 사장은 그러나 밀어붙였다.
선박용 전선업체로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초 머뭇거리던 이형종 회장도 고무배합표를 얻기 위해 직접 일본까지
건너가는 열의를 보였다.
대우와는 납기를 어길 경우 하루 1만달러의 페널티를 내기로 하고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관련 규격이 10여개나 됐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조차 힘들었다.
독일 대사관 등 외국 대사관을 찾아갔다.
최 사장은 "종전의 전선과는 개념이 달랐다"며 "간부사원들은 회사에서
밤새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술회했다.
극동전선은 결국 해냈고 납기 준수, 품질에 만족한 대우가 추가물량까지
주문했다.
극동전선은 이 거래에서 무독성 난연을 5백만달러어치 공급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