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잉사의 신예항공기 B777.

지난 96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서 운항하기 시작한 첨단기종이다.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한 뒤 하늘에 실제로 띄우기까지 걸린 기간은 4년.

보통 새로운 기종의 항공기를 개발하는데 7~8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초스피드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항공기는 단 한장의 종이 설계도면도 쓰지 않고 컴퓨터설계로만
제작된 최초의 항공기로 유명하다.

B777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그것도 종이 설계도면없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CALS(Commerce At Light Speed, 광속상거래)라는 최첨단 기술이 활용된
덕분이다.

CALS는 설계 개발 구매 생산 판매 등 표준화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보잉이 컴퓨터로 항공기를 입체설계하기로 한 것은 그때만 해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항공기제작에는 수백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종전에는 나무로 부품을 깎아 조립해보는 모형제작방식이 주로 사용됐다.

나무모형을 만들고 그것을 조립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보잉은 나무모형을 깎는 대신 가상공간에서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방법을 택했다.

항공기제작 작업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일본 가와사키중공업과 미국 보잉 본사를 연결한 광통신망이 모든
작업정보를 주고 받는 통로였다.

4년만에 설계자의 머리속에 있던 B777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비행기 제작의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보잉의 획기적인 실험은 항공기업계의 눈길만 잡은 것이 아니다.

다른 업계에서도 관심을 쏟았다.

이유는 엄청나게 높아진 생산성과 원가절감 효과때문.

B777의 이전기종인 B767을 만들때 제작비의 75%를 차지했던 설계변경
비용이 20%로 줄었다.

인건비도 30%나 절감됐다.

반면 부품제작에서 발생하던 불량률은 15%에서 5%이하로 떨어졌다.

돈도 적게들이면서 빠른 시간에 안전한 제품을 만들 수 있으니 주목을
끈 것은 당연하다.

CALS는 말 그대로 빛의 속도만큼 빠른 시간안에 상거래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되는 CALS는 용어보다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기업뿐 아니라 국가산업전체가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개념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CALS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80년대 중반 옛 소련과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 국방부가 투자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초기엔 "컴퓨터를 통한 군수물자구매"가 고작이었지만 미국제조업체들이
활용하게 되면서 의미도 차츰 바뀌었다.

"제품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의 정보화"라는 개념으로
확산됐다.

90년대 들어서는 작업현장에서 문서를 없애자는 "페이퍼리스"(paperless)가
유행했다.

이때 생산현장에서 생기는 모든 자료가 데이터로 저장됐고 이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 자료가 표준화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연구개발까지 한 묶음으로 엮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CALS를 떠나서 기업경영을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CALS의 최종 목표는 기업의 수평적 결합.

국가별 기업이 아닌 글로벌 CALS그룹의 탄생이다.

따라서 CALS는 "산업혁명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기업들도 이같은 움직임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은 CALS체제 구축을 위해 프로세스 혁신작업을 진행중이다.

삼성전자는 <>구미.기흥의 무선기술 생산연구소와 <>미국 샌호제이
멀티미디어연구소 <>인도 방갈로르의 소프트웨어연구소를 CALS로 연결하는
3각 연구시스템을 가동중이다.

서로 다른 기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정보를 표준화하고 수시로 교환해
나가고 있는 것.

LG그룹도 국내외 협력회사와 데이터교환을 위해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총 투자비는 4천억원에 이른다.

대우그룹은 "CALS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우중공업 중앙연구소와
중형항공기사업팀을 시범업체로 선정했다.

포항제철도 기존 전자문서교환(EDI)시스템을 CALS로 확대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부도 늦었지만 CALS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시작했다.

건설교통부는 오는 2005년까지 건설정보화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건설CALS
계획을 최근 마련했다.

이를 위해 2001년까지는 건설 인허가업무를 전산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특허청도 전자출원시스템을 세우기로 했다.

이제 CALS는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부 대기업과는 달리 아직 CALS에 대해 개념조차 잘 모르고 있는
중소업체들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모색해야 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