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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프로] (22) 제2부 : <10> '화폐 디자이너'..박창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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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식(51)씨.

    그는 화폐위조범을 가장 싫어한다.

    이 세상 어디에 화폐위조범을 좋아하는 이가 있을까 마는 그만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드물다.

    화폐위조범을 "내 생애 최대의 원수"라며 스스럼없이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 연유는 그의 직업에서 비롯된다.

    그의 공식 직책은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연구실의 선임연구원.

    요컨대 화폐디자이너다.

    바하가 음악의 아버지라면 그는 "한국화폐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모든 화폐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기 때문
    이다.

    1원짜리 주화에서부터 5원 10원 50원 1백원권 주화는 물론 1천원 5천원
    1만원권 지폐까지.

    대한민국 국민치고 그의 작품을 만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는 셈이다.

    "온 힘을 기울여 선보인 신권이 발행된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보란듯이
    위조화폐가 나올 때는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위조화폐가 등장하면 화폐 한 종류를 디자인하는데 걸린 1년여의 세월이
    물거품처럼 느껴진단다.

    요즘은 최첨단 컬러스캐너 등이 등장, 화폐위조기술이 급속히 발달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위조기술 개발에 더욱 신경을 쓴다.

    현재 세계적으로 화폐디자이너는 20여국에 걸쳐 2백명이 채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직업중 하나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외국 화폐제조회사마다 그에 관한 상세한 신상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노하우가 탐이 나 틈만 나면 스카우트하려는 속셈에서다.

    실제로 몇몇 외국업체가 암암리에 고액의 연봉을 내세우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온 적도 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제일 먼저 그 나라의 화폐를 보라"

    그는 그 나라의 가장 보편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게 바로 화폐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우리 화폐에 담겨 있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는 무엇일까.

    "일반국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주저없는 그의 명쾌한 대답이다.

    화폐는 또 중용의 미덕을 가지고 있단다.

    문화의 중심축을 잃으면 화폐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보편성과 중용이라는 두개의 프리즘을 통과해 걸러진 문화의 정수가 화폐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화폐위조범이라면 종교단체는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이다.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화폐에 들어갔을 경우 다른 종교집단들이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종파의 집단이기주의가 화폐 디자인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단다.

    예컨대 1만원권에 들어있는 용의 형상을 두고 지금도 일부 기독교 단체로
    부터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를 떠난 전통 문화는 있을 수 없다는 데서 그의 고민은 시작
    된다.

    23년전.

    그는 화폐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엉겹결에 이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단지 한국조폐공사가 고향인 대전에 있어 지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디자인회사인지 알았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입사후 화폐디자인을 직접 하기 위해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화폐디자인 세계에서는 보통 10년의 도제생활을 거쳐야 진정한 프로로
    인정받는다.

    "천년 만년 영원할지도 모를 화폐를 직접 만든다고 생각하면 짐이
    무겁습니다"

    그의 말대로 화폐야 말로 "작품의 영원성"이 보장되는 보기드문 예술품
    일지도 모른다.

    작품평가도 만인으로부터 받아야 하기에 항상 심적인 부담을 안고 산다.

    그래도 우리 화폐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외국에서는 우리 돈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단한 찬사를 받고
    있다고 그는 자랑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홀대를 받고 있단다.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소홀히 하는 우리 민족의 그릇된 습성이 돈을
    보는 관점에도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문화의 큰 흐름을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화폐디자이너의
    주임무다.

    요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반영되는 추세다.

    "크기는 보다 작게, 색상은 보다 밝게, 디자인은 보다 단순하게"

    가장 세속적인 화폐를 가장 문화적인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것.

    이 딜레마는 그가 평생을 두고 풀어나가야 할 숙명이다.

    < 류성 기자 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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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산업1부)
    정태웅(경제부) 장진모(증권부) 김문권 류성(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정종태(정보통신부)
    박해영(문화레저부) 김혜수(국제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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