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각국을 지원하기 위해 3백억달러 규모의
"아시아경제 회생기금"을 만들 계획이라는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대장상의
최근 발표는 늦었지만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지난달 29일 미국 연준리(FRB)가
연방기금금리를 0.25%포인트 낮춘데 이어 나온 일본의 이번 자금지원계획이
아시아경제의 위기탈출은 물론 세계경제의 파국을 막는데도 큰 도움이 되리
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경제가 빠른 시일안에 회복하자면 이번 자금지원계획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일본의 강력한 경기부양 노력 및 부실채권의 정리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의 정책협조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일본은 지난해말 제안했다 흐지부지된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문제를 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며, 얼마전에는 한.일
자유무역지대 조성을 제안하는 등 전에 없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데 그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풀이된다. 우선 아시아지역의 경제난을 더이상 방치했다가는 자칫
일본경제마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몰리게 되기 쉽다는 위기의식을 들 수
있다. 아시아발 외환위기는 러시아를 거쳐 중남미 동유럽 등으로 순식간에
퍼졌고 그 결과 일본은행들은 막대한 금액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떠안게 됐다.

일본정부도 이번에 제공하는 자금이 일본 금융기관에 대한 부채상환 및
일본제품의 구매에 사용됨으로써 결국은 일본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주목한 것 같다. 일본 수출입은행이 지난 5월 한국에 10억달러의 일본제품
구매자금을 제공한 외에 한국 중소기업의 원자재구매 및 설비투자를 위해
이번에 추가로 30억달러를 제공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다른 배경으로 내년초부터 유럽단일통화(EMU)가 출범함에 따라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 세계에서 고립되기 쉽다는 걱정도 있다. 일본이 이번 자금
지원계획을 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
에서 발표하겠다는 것도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를 강조하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의 지원을 유도해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일본에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이나
감세, 그리고 아시아각국에 대한 자금지원만으로는 부족하고 산업 및 금융
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경제의
중심을 중화학공업에서 지식산업으로 옮기고 과보호를 받아온 건설.금융.
유통시장을 개방하며 부품표준화 등을 통해 산업내 무역을 확대함으로써
아시아각국간의 수직적인 분업체계를 수평적인 분업체계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런후에야 AMF나 자유무역지대 또는 엔화 국제화 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