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련 산하 9개 은행 노조가 결의했던 사상 최초의 은행연대파업이
파업돌입 시점인 29일 아침을 전후하여 철회 또는 중단됨으로써 금융권이
대혼란을 피하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금융거래가 폭주
하는 월말과 추석을 앞두고 총파업이 강행됐을 경우의 혼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은행측과 금융노련간의 철야협상이 결렬됐을 때까지만 해도 금융
대란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이 영업개시 직전
또는 직후에 파업을 철회하거나 중단한 것은 금융노련의 협상결렬 선언
이후에도 은행별로 협상을 계속한 덕분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날 오후 금융노련과 은행측이 재협상을 벌여 작년말 기준 32%의 인원감축
과 직급별로 9~12개월분의 퇴직위로금 지급에 합의함으로써 협상을 일괄타결
할 수 있었던 것도 개별은행 노사의 파업회피노력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흥 외환 등 몇몇 은행의 파업중단 및 노조원들의 업무복귀가 늦어져
일부 은행 점포에서 고객들이 잠시 불편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마주보고 달리던 은행 노사의 대립이 총파업이라는 극한상황을 면하게 된
것은 금융시스템이 전면 중단될 경우 이는 곧 노사 모두의 자살행위라는
인식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업예정일 전후로 일부 은행점포에서
빚어진 예금인출소동은 은행노사 분규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된 케이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은행 노사가 여론에 밀려 일단 총파업이라는 파국은 피했지만 앞으로 합의
이행과정에서 언제라도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그러나 좀더 시야를 넓혀
보면 금융구조조정이 정리해고문제에 발목을 잡혀 지금까지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지금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중인 경제개혁의 핵심은 은행개혁이며 은행개혁이 이뤄져야만 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도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정부가 산소호흡기를 떼면 살아남기가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
에서, 또 납세자가 은행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부담을 떠맡아야할 상황에서
노사가 정리해고문제에만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금융개혁은 당장 금융종사자 모두에게 큰 고통이겠지만 궁극적으로 금융
산업의 체질을 강화시켜 경제재도약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노사가 협조적
으로, 그것도 최단시일내에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될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이번에 은행노사가 고용조정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장애물 하나를 넘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은행의 구조조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은행노사는
이번에 보여준 타협정신을 살려 앞으로의 구조조정 후속협상이나 합의사항의
이행과정에서도 고통분담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