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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밤섬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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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부터 서울 마포강변은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났다.

    마포에서 보이는 원근의 경치는 일품이었다.

    그중에서도 강 가운데 넓게 펼쳐진 밤섬의 모래밭은 "율도명사"라하여
    "마포팔경"의 으뜸으로 꼽혔다.

    우거진 버드나무숲과 섬 주위에 한가롭게 떠있는 고깃배들은 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해 밤섬이 건너다보이는 마포강변에는
    일찍부터 풍류객들이 정자와 누각을 짓고 거처했다.

    양녕대군은 영복정을 짓고 만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도 담담정을 짓고 이현로 이명민 등과 자주
    주연을 벌였다.

    토정 이지함도 강변에 움막을 짓고 기거해 "토정동" "웃토정" 등의 지명이
    아직 전해온다.

    밤섬에는 뽕나무와 감초 작약 등 약초를 많이 심고 소 염소 등을 놓아
    길렀다.

    약포와 목축을 관리하는 관리인들도 나와 있었다.

    또 섬에는 고려시대의 명신 김수가 심었다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어
    유명했다.

    "신령한 약초냄새는 천태산에라도 들어온듯/좋은 술에 취한 기분 수중 선가
    가 여기라네"

    광해군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정구가 읊은 것처럼 평화롭기만 했던 곳이
    밤섬이었다.

    밤섬은 해방뒤에도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여름이면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68년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4만7천여평의 밤섬은 폭파돼 사라졌다.

    트럭 4만대분의 돌은 여의도 윤중제공사에 쓰였다.

    조선의 한양천도 이래 17대째 농사짓고 고기잡이로 생활해오던 62가구
    4백43명의 주민들은 뭍으로 이주했다.

    본적조차 없어지고 실향민 아닌 실향민이 돼 30년을 살아온 원주민 1백50여
    명이 마포구청의 주선으로 오는 10월14일 한쪽 귀퉁이만 되살아나 철새의
    낙원이 되어 남아있는 밤섬을 방문한다는 소식이다.

    사람에게 고향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흔적인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그래도 찾아갈 고향의 흔적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댐공사로 고향을 물속에 묻어버린 수많은 이들의 추석을 맞는
    심정은 어떨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3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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