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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약] 근대제약업 출발은 45년 10월26일 .. '업계 성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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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제약업의 출발은 1945년 10월26일로 잡는다.

    당초 조선약품공업협회로 출범했다가 53년 대한약품공업협회, 88년
    한국제약협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의약품 개발을 통한 국민보건과 산업발전에
    이바지해왔다.

    해방직후에는 밀수나 미군기지를 통해 들여온 결핵약 설파제 비타민 등
    외제의약품이 양약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유한양행 등 30여개 업체가 군정당국으로부터 수입의약품 원료를 배정받아
    항생제 해열진통제 등 몇가지 의약품을 생산하기는 했지만 전체 의약품
    수요의 10%를 넘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제약생산시설은 파괴됐거나 후퇴하는 공산군이
    거두어갔다.

    50년대의 수난기속에서도 53년 약사법이 공포돼 제약산업은 가내수공업
    형태에서 공장형 근대공업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아울러 국제협력기구(ICA)자금이 들어와 제약산업 현대화의 밑거름이 됐다.

    60년에는 외자도입촉진법이 발효됐고 경제기획원의 적극적인 정책드라이브에
    따라 외국 메이커로부터 기술제휴 및 원료도입이 활발해졌다.

    60년대 제약업계는 <>64년 경쟁적 과당광고에 따른 외환유치 저해 <>65년
    "메사돈 파동"으로 일컬어지던 불량의약품 유통사건 <>수입의약품 억제책인
    "수출입 링크제" 폐지 등으로 진통을 겪었지만 왕성한 성장잠재력을 보였다.

    70년대에는 내수를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제약업종은 직업선호도 1위를 달렸고 72년엔 주5일 근무제가 도입돼
    노사화합 및 산업평화체제구축의 본보기가 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과당경쟁으로 인한 난매 할인할증 특매 사은판매 등
    거래질서에 혼란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또 77년에 실시된 의료보험 및 부가가치세제는 업계의 경영전반에 큰 부담을
    지웠다.

    80년대 들어서는 <>완제의약품의 수입자유화 <>물질특허제도 도입으로 인한
    모방제품 생산 금지 <>한국우수의약품제조기준(KGMP) 설비구축을 위한 제약
    기업의 출혈투자로 제약경기가 70년대만은 못했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신약개발과 해외시장개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연구능력제고 및 신약개발 <>합리적 경영을 통한 적정이윤
    확보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기업윤리 구축이라는 3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약업체들은 노력하고 있다.

    정부도 신약개발이 고부가가치 실현을 통한 국부 창출의 수단으로 판단,
    점차 지원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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