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뉴욕에서 열린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간의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한국경제와 직결되는 세계적 경제위기 대책이 중점 논의됐다
는 점에서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끈다.

클린턴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로, 오부치 총리는 지도력 결핍으로 정치적
입지가 모두 좁아진 터여서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경제
회복에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두 경제대국의 정상이 무릎을 맞대고 위기극복
방안을 협의했다는 것만으로도 위기 당사국들엔 큰 의미를 지닌 만남이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예상대로 이날 회담 결과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보다는
양국이 각자의 입장을 설명하고 상호협조를 다짐하는 수준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오부치 총리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설명한 일본정부의 금융회생
계획은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와 미국식 정리회수기구 설립 등 포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결여돼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금융회생계획이 정상회담에 임하는 오부치 총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야당이 성급하게 동의해준 허점 투성이의 임시계획이라는
혹평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국가들에 4백3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오부치 총리의 약속도 이미 제공된 자금을 포함하고
있어 공허한 말의 성찬에 그칠 공산이 크다.

클린턴 대통령 역시 오부치 총리로 부터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경제회생시책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을 생산적으로 이끌었다고는 할
수 없다. 올해에만 7백억달러에 이르는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세계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일본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 보다 신랄한
추궁이 있어야 했다고 본다.

지금 경제대국이 해야할 일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일
양국은 세계적인 경기후퇴를 막기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지만 특히
일본의 경우 자국경제의 추락이 아시아경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펴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얼마나 실천에 옮겨왔는지
묻고 싶다.

일본정부가 수십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실패한 것은 매번 행동보다 말이 앞서 정책의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내수확대와 금융개혁을 위해 신속하고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다면 아시아지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위기가 닥치게될 공산이
크다는 국제통화기금(IMF)연례보고서의 경고를 일본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미국 역시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경제의 견인차 역할에 보다
충실해주길 바란다. 최근 미국경제가 8년간의 호황끝에 주춤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은 세계경제의 혼란과 충격을 흡수할 수있는 유일한 "거대
경제권"임을 잊어선 안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