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무슨 전염병처럼 퍼진 것이 "세계화"였다.

온 나라가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세계화"의 개념정리를 놓고 이른바 식자들의 이런저런 해석만 구구했다.

"세계화"는 개방과 자유화를 뜻하기도 했고 흔히 국제수준이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같은 정체불명의 "세계화"라는 명목아래 우리는 외국 것을 덮어놓고
받아들였고 여행자유화 바람을 타고 수많은 외화를 길에 뿌리면서 분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했다.

그러나 IMF이후에도 이렇게 허망한 "세계화"의 모습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각종 제도기준을 변경하는데 있어 기준의 효율성과 적정성은 따져보지 않은
채 국제표준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또 다시
여행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답답하기 그지
없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구조의 동맥에 주체성 없는 "세계화"라는 멍에가 찌꺼기
처럼 남아있다면 이제는 말끔히 닦아내야 할 때가 아닐까?

한국의 음식중에 비빔밥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의 비빔밥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음식으로 우리
조상들은 밥맛이 없을 때 밥에다 이것저것 넣고 고추장 한숟갈 얹어 썩썩
비벼먹었는데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다.

비빔밥은 그저 여러가지 음식을 넣고 섞어 적당히 한끼 때우는 그런 음식
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비빔밥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유명한 전주비빔밥
뿐만 아니라 돌솥비빔밥, 또 돌솥중에서도 잡곡비빔밥 영양비빔밥 등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비빔밥이 선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음식을 넣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맞는 새롭고 독특한
형태의 음식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우리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조상들처럼 우리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계화"일 것이다.

비록 IMF 구제금융을 받고있는 입장에서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모양갖추기만으로는 너무 벅찬감이 있다.

올바른 "세계화"는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것을 섞어 내 것으로 재창조하는
흥미로운 작업으로 IMF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진정한 "세계화"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