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졸간에 접한 비보에 참담한 마음 가눌길이 없습니다.

최종현 형.

누구보다 건강하시던 형이기에, 갑작스러운 부음은 마치 꿈속에서 듣는 듯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경륜과 지혜를 갖춘 진정한 경제인이 드물다고 개탄하는 세상에서 형은
우리 기업인은 물론이고 온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던
재계의 거목이요, 경제계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 형이 이렇듯 청천벽력과 같이 가시다니 참으로 망극한 일이요,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낯설고 물설은 외국땅,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1950년대 중반
우리가 그 외롭고 어렵던 미국유학시절을 거쳐 40여 성상을 지내오는 동안
형은 남다른 열정과 한결같은 자세로 전문경영인의 외길을 걸으면서 타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형의 넉넉한 인격, 시대를 넘어서는 혜안과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개척해
나가던 탁월한 능력을 생각할수록 존경과 흠모의 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형은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아, 때로는 과중해 보이는 사회적 기대와 요구속에서도 묵묵히
한국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나라가 모두 중심을 잃고,경제를 이끌고 나갈 기업인들의 할 일이 산적한
이때, 다시금 형을 생각하니 형이야말로 시대의 선각자요 우리 기업인들의
사표였습니다.

참다운 민주주의가 꽃피기 위해서는 같은 궤도위에서 경제발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법과 질서가 잘 지켜져야만 한다고
강조하시던 형의 모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형과 함께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으로, 일본으로 다니면서,
비행기안에서 버스안에서, 마음을 터놓고 머리를 맞대고 나누던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두번 다시는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니, 평생의 지기를 잃은
슬픔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시며, 전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하시던
그 패기넘치는 모습이 다시금 눈 앞에 어리는 듯 합니다.

형께서 못다 베풀고 가신 자유시장경제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숭고한
이상은 이제 우리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일생을 조국의 경제발전에 헌신해 온 형의 거룩한 유지를 받들어, 남아있는
우리들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갈 것입니다.

최종현 형 부디 영생복락을 누리소서.

정세영 < 전경련 고문/현대자동차 명예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