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섹스스캔들과 뒤이은 석연치않은 전쟁.

클린턴 미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곤경을 치르고 있는
사이에 영화 "왝더독"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라도 갖다온 듯
최근 미국정가의 상황을 요약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걸스카우트와의 성추문에 휘말린 현직 대통령이 미디어
전문가들을 고용, 가상의 전쟁을 일으킴으로서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난다는게 줄거리다.

왝더독(Wag the dog)이란 말 자체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친다"는 뜻의 정치속어다.

이 영화는 때마침 비슷한 처지에 몰린 클린턴이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함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이번 폭격의 표면적 이유는 현지 미국대사관에 테러를 가한 이슬람
과격단체를 응징한다는 것이었지만 미국인들마저 그 이면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포함됐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왝더독"의 진정한 가치는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듯 우연히
들어맞은 영화줄거리에 있지는 않다.

오히려 미디어가 대중의 판단능력을 마비시키고 현상의 이미지까지
조작해내는 현대사회의 모순을 통렬히 꼬집은데 있다.

영화속 미디어전문가인 로버트 드 니로가 전쟁상대로 택한 나라는 알바니아.

국가이미지가 "음험하다"는게 유일한 이유다.

그는 홍보맨을 동원, 부정확한 정보를 흘려 기자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헐리우드 영화제작자(더스틴 호프만)를 시켜 가짜 전쟁화면을 만들어낸다.

진실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기에 유일한 걸림돌이 되는 CIA에게는 "전쟁을
안하면 너희도 직장을 잃는다"고 협박, 공범으로 끌어들인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흐르기 쉬운 대중을 상대로 최고의 쇼비지니스를 벌인
것이다.

대중의 가치판단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진실을 감별해내는 개인적인 능력향상 못지않게 미디어의 소유구조에 대한
감시를 늦춰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 비디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이 영화는 다음달 12일 국내에서도
개봉된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