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낳았던 한남투신 처리가 결국
국민투신 인수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과 금융감독위원회의 미숙한 대응으로 적잖은
상처도 남기게 됐다.

한남투신이 현 정권의 본향인 광주.전남지역에 영업기반을 두고 있어
처음부터 처리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를 낳았다.

실제로 지난 14일 영업정지 조치 이후 정치권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됐다.

광주시장 전남도지사 국회의원등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원금보장"을
요구하며 금감위를 압박했다.

83만여 유권자가 당장이라도 등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급기야 18일에는 1천여명을 웃도는 광주전남지역 고객들이 상경, 원금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로 번졌다.

실력행사로 정치권과 금감위를 곤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민회의는 22일 당정회의에서 사실상 투자원금을 보장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일 만큼 다급해졌다.

금감위는 겉으로는 "원금보장 불가방침"을 거듭 확인했지만 내심 정치권
만큼이나 다급하긴 마찬가지였다.

공식입장은 투신업계의 자율적인 처리였다.

그러나 정작 인수자로 낙점한 대한투신이 거세게 반발하자 금감위는 몹시
당황했다.

최소한의 원금보장이 사실상 물건너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투는 한남투신의 신탁재산 인수로 동반부실화될 것을 염려했고 노조도
경영진에 압력을 넣었다.

지난해 12월 신세기투신을 인수했다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투신의
전례 때문이었다.

신탁업 자체를 부정하려든다는 금감위의 노기에도 불구, 끈질기게 정부에
원리금보장 대책을 요구했다.

결국 대투는 금감위에 미운털이 박히고 말았다.

게다가 보복성 특검이랄수 있는 투신사 실태조사라는 금감위의 엄포로까지
이어졌다.

대투의 반발로 한남투신 처리 시나리오가 빗나가자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이 위원장은 23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한남투신 신탁재산 인수를
요청했고 25일에야 공식적인 승낙을 얻어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방문 당일에야 가까스로 한남투신 사태는 겨우 해결점
을 찾은 것이다.

< 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