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인식이 변하고 실제 시장 움직임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변화의 핵심은 "소유"에서 "사용"으로 그 개념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이후 급격히 달라진 모습이다.

"갖고 있으면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는 부동산신화가 깨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제일 큰 변화는 일반 수요자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개인들은 그동안 큰 평수의 아파트나 목좋은 땅을 갖고 있으면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자산이 부풀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한국의 중산층"이 형성됐다.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진입의 상징은 바로 부동산 소유여부였다.

하지만 부동산값이 급락하면서 부동산은 오히려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시장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아파트 토지등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실수요자는 찾기 힘들다.

게다가 크고 비싼 물건일수록 하락폭이 크다.

수도권지역 아파트의 경우 4인가족에 알맞는 30평형대는 "바닥"을
확인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최근 실시된 서울시 6차동시분양등 분양시장에서도 30평형대는 분양율이
100%를 넘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땅값 건축비등을 감안할때 평당 5백만~6백만원이
적정수준입니다.

30평형은 1억5천~1억8천만원이 제값이란 얘기지요.

큰 평형이라고 이 기준에서 벗어날 이유는 없습니다"(정광영
한국부동산컨설팅대표)

현재 4억~5억원대를 호가하는 50평형은 2억5천만~3억원이 적정수준이란
계산이다.

전세시장에서도 전세값이 하락하자 차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차액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주는 경우도 생겼다.

웬만한 상가마다 붙어있던 권리금도 사라진지 오래.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은 이제 확실히 부담이 되고 있다.

기업의 시각도 달라졌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그동안 영업활동보다 부동산을 통해 "힘"을 키워왔다.

부동산을 담보로 목돈을 빌려 또다른 부동산에 투자했다.

설사 영업이익은 못낸다해도 부동산값이 가파르게 상승, 기업의 외양을
과시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값이 담보가치아래로 떨어지면서 사정은 1백80도 달라졌다.

영업쪽에서 이익을 내도 회사가 망하는 흑자도산이 잇따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위해 기업들은 부동산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팔리면 살고 안팔리면 죽는"

그야말로 부동산매각에 목을 건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성업공사 토지공사등 정부기관에서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으나 5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매물이 언제까지 소화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기업들이 부동산에 매달리는 일은 앞으로 전혀없을 것"(심광수
성업공사부사장)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부동산에 대한 인식과 시장변화에 따라 건설업체들의 영업전략도 바뀌고
있다.

과거 아파트건설은 현금을 동원하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건설=미분양=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선 "단기적으로 파격적인 조건을 통해 미분양을
해소하며 장기적으로 주택비중을 낮추고 교량 병원 호텔등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전문화해나가는 길밖에 없다"(쌍용건설 김승준 기획이사)는
설명이다.

물론 이런 체질개선과정에서 건설업체의 부도도미노현상은 어쩔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십년을 고수해온 정부정책의 기본 틀 역시 새로 짜지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정책은 투기억제에 촛점을 맞춰왔다.

토지공개념제도등이 단적인 예.

그러나 이젠 규제완화조치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외국인투자자유화 분양가자율화 미등기전매허용등은 과거엔 엄두도
못낼 정책들이다.

자산디플레이션을 막기위해 "투기가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건교부고위
관계자)는 속마음까지 내비칠 정도다.

앞으로의 정책이 실수요자들의 매매활성화에 촛점이 맞춰질 것임을 예
고하는 대목이다.

시장과 정책의 변화는 부동산투자의 개념도 바꿔놓고 있다.

부동산을 사서 "원금을 부풀리는" 투기에서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의
형태다.

다시 팔 것을 조건으로 부동산을 사서 임대료만 챙기는 "세일앤리스백
(Sale & Lease Back)" 은 대표적이다.

시장개방으로 국내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외국인들이 바로 이런 잣대속에서
부동산을 고르고 있고 이런 인식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부동산투자기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동산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인식변화와 부동산시장개방은 기존의
부동산개념을 일순간에 바꿔놓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 육동인기자 dongi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