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러시아의 한국외교관 추방에 대한 맞대응으로 우리 정부가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측 주장은 추방이유로 한국외교관이 뇌물을 주고 비밀문서를 빼냈다는
것이고 우리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양국이 외교관추방을 주고 받는 것을 보면 서로의 입장을 바꾸려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원래 외교관은 근대국가 형성 이래 국가를 위해 공공연한 거짓말쟁이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러시아와 한국사이에 이번 사건자체를 놓고 옳고 그름을 다투어
결론내기는 어려운 면면이 있다.

또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공개하기도 어려운 문제이기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도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취한 행동의 배경과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문제도 고려하여 한.러관계가 장기간 냉각기에 빠지지않도록 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취한 이번 조치는 객관적으로 보아 이례적인 면이 없지않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만 보아도 언론공개, 특히 대사의 외무부 소환에 대해
사전 통보가 없었던 점 등이 그것이다.

이를 놓고 국내에서는 러시아가 한국에 품었던 외교적 소외감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 러시아가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취했다고 하는
생각은 과장된 것이다.

이미 우리의 경우와 유사한 사건들이 최근 수년간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국내에 국가보안정보국과 외무부간의 알력설도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보안국과 외무부 창작에 의한 올가미설도 나왔다.

모든 것이 가능하겠으나 현재로선 충분한 근거가 없다.

러시아 국내상황에서 짚히는 것이 있다면 러시아 관료조직의 붕괴와 정보
보안 조직의 정체성문제다.

러시아 관료조직은 지난 90년 이후 급속도로 와해돼 국가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은 상태에 놓여있다.

외무부는 이런 와중에서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접촉과정에서 이전과 같은 기강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과거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달리 탈냉전속에서 대외 활동의
위축은 물론 정보 내용과 대상이 바뀌면서 연방보안정보국(FBS)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아마도 국내의 적을 색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강화와 국가기강 확정이라는
이중적 목표를 이루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시적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러시아에 흐르는 커다란 조류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했음을 알 수있다.

러시아와 같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나라에서 외교활동을 벌이면서 자칫 숲을
못보고 나무만을 보는 경우 생각못한 화를 자초할 수있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러시아를 냉대했다거나 소외시켰다는 의미보다 한.러
관계가 한.소관계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상당한 비정상적인 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서둘러 북방외교를 하면서 그것도 강대국 경험이 없이 망해가는 강대국과의
수교과정은 원칙의 결여와 단기적 이익의 집착으로 출발부터 쌍방이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절제한 물량공세, 수교를 위한 무모한 돌진, 북한을 의식한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외교 등은 한.러관계는 물론 한국외교스타일에 좋지않은 인상과
유산을 남겼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대러시아 접근 창구는 아주 제한적이었다.

모스크바 중심적이면서 정보중심적이었다.

또한 아시아담당 또는 한반도 담당인사 편중적인 접근법을 써왔다.

이결과 우리는 러시아 주류속에 지한파인사를 심지 못했다.

이에따라 오늘과 같은 위기속에서도 다양한 채널 가동이 어렵게 되었다.

어차피 이번 사건은 상당기간 양국에 냉각기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이 냉각기가 장기화되지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러시아 외교활동전략을 새롭게
해야한다.

설령 법적 제도적 오류가 없었더라도 러시아 전체를 읽으면서 그것이 갖는
활동상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동시에 러시아 내의 인맥구축을 보다 넓게 해야 한다.

학계 정계 경제계에서 주류를 이루는 인사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러양국은 이번 사건을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양국관계발전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용출 < 서울대 교수 / 국제정치학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3일자 ).